비가 내린 지난 4일 오후 충북 청주동물원. 시베리아 호랑이 한 마리가 끊임없이 좌우로 어슬렁거린다. 폭 7~8m 정도 우리 안에서 한쪽 끝에 닿으면 반대쪽으로 돌아가기를 되풀이했다. 이른바 ‘정형 행동’이다. 야생동물이 좁은 곳에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아무 의미 없이 하는 행동이다. 몸 일부를 흔들어대고, 창살을 계속 물어뜯는 것도 이런 정형 행동이다.
좁은 우리에선 비정상 행동 #환경 바꿔주면 야성 되찾아
실내 체험 동물원보다는 낫지만, 대형 야외 동물원 상당수 또한 환경이 그리 좋지 않다. 대부분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해 예산에 제약을 받아서다. 청주동물원은 여유가 생기는 대로 표범사를 개선하고, 스라소니가 살 곳을 새로 짓고, 물새장도 크게 만들었지만, 아직 호랑이사는 고치지 못했다.
대구 달성동물원은 1970년 개원한 뒤 50년 가까이 증ㆍ개축을 못했다. 동물원이 들어선 달성공원 전체가 사적 62호여서 증·개축을 할 수 없다. 한 칸 3평가량인 늑대 우리를 두 칸으로 틔우는 것 정도가 가능한 조치였다. 윤성웅 달성공원관리소장은 “2022년에 동물원을 이전할 계획"이라며 "그때까지 동물들이 최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세심하게 보살피는 것 정도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말했다.
전주동물원은 지자체장이 예산을 지원해 시설을 대폭 개선하고 있다. 2014년 김승수 시장이 당선된 뒤 호랑이ㆍ사자ㆍ늑대사 등을 차례로 바꿨다. 시멘트 바닥의 철창 우리를 철거했다. 대신 넓은 부지에 흙 둔덕을 쌓아 올리고 나무를 심는 등 최대한 동물이 살아가는 야생 환경에 가깝게 꾸몄다. 조동주 전주동물원장은 “환경이 바뀌자 늑대 털에 윤기가 흐르고 전에는 하지 않던 하울링(‘아우~’ 하는 소리를 내는 것)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동물원 동물의 생활 환경을 바꾸는 데는 관람객의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은 치타 방사장에 수풀을 심었으나 “풀에 가려 치타가 보이지 않는다”는 관람객 항의에 결국 일부 수풀을 잘라냈다.
건국대 한진수 교수는 “선진 동물원은 멸종 위기종을 보호ㆍ번식시키고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생물 다양성 보전 역할을 한다”며 “국내 동물원도 이런 ‘노아의 방주’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서울대공원 동물원과 청주동물원, 에버랜드 등이 호랑이ㆍ스라소니ㆍ삵ㆍ수달ㆍ반달곰ㆍ산양 등의 종 보전 활동과 연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