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 건강보험 지원 강화했다지만 … 환자들 "아직도 그림의 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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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년 전 유방암에 걸린 A씨(52)는 암이 폐로 번졌다. 좋다는 약을 써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중 2003년 말 A씨에게 희망이 생겼다. 새로 처방받은 약이 효과를 본 것. 하지만 2년 만에 이 약에 대한 건강보험 혜택이 없어졌다. 치료 과정상의 특정 시기와 용도에 한해서만 건강보험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준희 서울대병원 유방암 환우회장은 "치료를 받다가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로 보험 혜택을 못 받게 되면 투병 의지마저 꺾인다"고 말했다.

#2=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선 의사 한 명이 하루 100명의 암환자를 본다. 어떤 의사는 항암제 2개월치를 한꺼번에 처방한다. 반 년치 호르몬 치료제를 무더기 처방하는 경우도 있다. 환자가 몰리다 보니 제대로 된 진료가 어려워서다. 김열홍(종양내과) 고려대 교수는 "의료의 질에 대한 개선 노력 없이 보장성만 강화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9월 암 환자 지원이 강화됐다. 진료비의 47%를 건강보험에서 부담하다 64%로 늘렸다. 내년에는 건강보험 부담금이 70%로 늘어난다. 상대적으로 환자의 부담은 줄었다.

그러나 부족한 게 많다. 환자의 절실한 요구는 외면받고, 의료의 질은 나아진 게 없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23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대한암협회의'암(癌)중모색-희망'심포지엄에선 환자와 의사의 쓴소리가 쏟아졌다.

◆ 고쳐야 할 게 많다=심장이 좋지 않은 B씨는 암 치료를 받을 때마다 심장보호제를 함께 복용한다. 1회 50만원인 약값은 본인이 모두 부담한다. 심장보호제는 항암제를 일정량 이상 투여할 경우에만 보험 혜택을 받기 때문이다.

요즘은 암 발병 후 생존기간이 길어져 신약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신약이 보험혜택을 받으려면 기준에 정해진 숫자의 임상시험 결과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소장암.담도암 등 희귀암의 경우 환자 수가 적어 그런 임상시험 기준을 맞출 수 없다.

지난해 10월부터 조혈모세포(골수) 이식에 대한 지원이 늘었다. 그 이전에 입원한 환자라도 합병증이 발병해 재입원하면 지원 대상이 된다. 이 때문에 장기 입원 환자들이 오전에 퇴원했다가 오후에 '합병증이 생겼다'면서 재입원하는 현상도 나온다.

성균관대 의대 구홍회(소아과) 교수는 "6세 미만 소아암 환자에 대한 진료비 경감은 입원 진료에만 해당하기 때문에 환자들이 무조건 입원하려는 부작용도 있다"고 지적했다.

제도 자체의 허점도 있다. 본인 부담이 줄어들면서 서울의 대형 병원으로 환자가 몰리고 있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제도가 바뀐 지난해 9월 이후 응급실 암 환자 수가 배 이상 늘었다.

반면 대구 지역 병원의 암 환자 수는 25% 줄었다. 이로 인해 지방 병원들의 재정이 악화하고 서울 지역 병원은 호황인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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