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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등반을 예견한 듯....작가 상상이 현실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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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구 작가 "제 상상이 현실로.."

'봄이 왔다 2' (2018, 캔버스에 아크릴릭, 182*227cm). 작가가 지난 여름에 그린 작품이다.[사진 학고재]

'봄이 왔다 2' (2018, 캔버스에 아크릴릭, 182*227cm). 작가가 지난 여름에 그린 작품이다.[사진 학고재]

 "이 그림은 언제 그리신 거예요?"
 29일 오전 서울 삼청동 학고재 갤러리 전시장에서 이종구 작가(64·중앙대 미술학부 교수)는 기자들로부터 이 질문을 계속 받아야 했다. 마치 작가가 예견이라도 한 듯이 그린 '봄이 왔다' 연작 때문이다.

학고재 갤러리, '광장_봄이 오다' 전 #남북 정상 백두산 등반 예견한 듯

 남북한의 두 정상이 백두산을 등정한 것은 지난 20일의 일. 그런데 28일 학고재에서 개막한 그의 개인전에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두 정상이 함께 있는 모습을 그린 대형 캔버스 작품이 걸렸다. 보통 작품 하나를 그리는 데 빨라야 한 달, 보통 한 달 반에서 두 달이 걸린다는 이 작가가 20일 이후 그림을 그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봄이 왔다 3'(2018,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194cm). [사진 학고재]

'봄이 왔다 3'(2018,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194cm). [사진 학고재]

 아니나 다를까, 이 작가는 "제 상상과 희망이 이렇게 빠르게 현실이 될 줄 몰랐다"며 "그림들은 두 정상이 처음 만난 4월 27일 이후 여름 내내 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광장_봄이 오다'라는 타이틀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봄이 왔다' 연작 4편을 선보였다. 전시장 입구에서 관람객과 처음 만나는 대형 작품은 '봄이 왔다 2'. 이 화폭 안에서 두 정상은 활짝 웃으며 노란색 발밑에 노란 꽃밭(유채꽃밭)에 발을 딛고 있고, 등 뒤로 굽이굽이 펼쳐진 백두대간 너머로 천지가 보인다. 실제론 지난 4월 판문점에서 만난 두 정상이 남북 군사분계선을 넘어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봄이 왔다' 4편의 연작  

'봄이 왔다 4'. 그동안 이종구 작가가 농촌 현실을 고발하며 그린 소들과 다르게 그려졌다. 코뚜레도 없고 풀발 위를 힘차게 달리고 있다.작가가 두 정상을 생각하며 그린 그림이다. [사진 학고재]

'봄이 왔다 4'. 그동안 이종구 작가가 농촌 현실을 고발하며 그린 소들과 다르게 그려졌다. 코뚜레도 없고 풀발 위를 힘차게 달리고 있다.작가가 두 정상을 생각하며 그린 그림이다. [사진 학고재]

 '봄이 왔다 3'은 두 정상이 손잡고 백두산을 향해 걸어가는 뒷모습을 담았고, '봄이 왔다 1'은 활짝 핀 철쭉꽃을 배경으로 두 정상이 악수하는 모습을 담았다. 세 작품 모두 지난 4월 판문점에서 만난 두 정상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기 위해 발을 떼고, 또다시 넘어 돌아오던 순간을 재현한 것이다. 작가는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며 화폭에 백두대간과 천지, 유채밭을 그려 넣었다.

'봄이 왔다' 연작의 마지막 작품도 눈길을 끈다. 이번엔 두 정상이 아닌 풀밭 위를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두 마리의 황소로 화면을 꽉 채웠다. 이전에 작가가 그려온 소 그림들과 달리 코뚜레를 벗어 버린 모습이란 점에서 다른데, 작가는 "남북 두 정상을 생각하며 그렸다"고 했다.

'공양'(캔버스에 아크릴릭,162*97cm) [사진 학고재]

'공양'(캔버스에 아크릴릭,162*97cm) [사진 학고재]

 노무현 전 대통령 초상화 작가

 1954년 충남 서산군 오지리 출신인 이 작가는 민중미술의 대표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중앙대 회화과를 졸업했으며, 1986년 '땅의 사람들' 전시를 시작으로 우리 농촌의 현실 문제를 고발하는 작업으로 주목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식 초상화를 그린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작가는 "이번 전시는 세월호 사건에서 광장의 촛불, 정권 교체로 이어지는 과정을 이번 전시 주제로 정하고 작품을 준비해왔다"며 "4·27 판문점에서 두 정상이 만나는 장면을 지켜보곤 다른 작업을 일시 중단하고  '봄이 왔다' 연작을 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광장_가족'(2017) 작품 앞에 선 이종구 작가. [사진 학고재]

'광장_가족'(2017) 작품 앞에 선 이종구 작가. [사진 학고재]

 "나는 현실을 증언하는 작가" 

 작가는 전시를 준비하며 쓴 '작가의 글'에서 "워낙 갑작스럽고도 감동적인 역사적 사건이어서 채 가시지 않은 격정의 감정으로 시작된 작업이었다"며 "그 결과 다소 추상적인 감상이나 민족적 감상주의를 드러낸 면이 없지 않다"고 밝혔다.

세월호 사건을 기억하며 당시 단원고 학생들을 그린 10점의 '학교 가자' 연작도 눈길을 끈다. 아이들에게 헌화하는 마음으로 해남에 있는 임하도에 가서 3개월간 학생을 추모하며 그렸다. 작가가 "아이들을 깊은 바다에서 인양하는 마음으로 그렸다"는 그림들이다.

이종구 작가가 세월호 아이들을 추모하며 그린 '천도'(2015, 캔버스에 아크릴릭, 64*32cm)[사진 학고재]

이종구 작가가 세월호 아이들을 추모하며 그린 '천도'(2015, 캔버스에 아크릴릭, 64*32cm)[사진 학고재]

 이 작가는 충남 서산 출신으로 1986년부터 농촌의 현실 문제를 고발하는 작업으로 주목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식 초상화를 그린 화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동안 농민의 삶, 농촌의 문제를 그려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선 최근에 광화문 촛불시위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 남북 정상의 만남 등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큰 사건을 다뤘다.

 이 작가는 "이번 전시회 '광장_봄이 오다'는 근래에 일어난 일들의 예술적 기록이자 증언이며 상상의 결과물"이라며 "이번 작업은 동시대의 작가로서 현실 앞에서 미학적 완결성보다 서사와 내용을 더 중시하고 강조한 측면이 크다"고 밝혔다. 그는 또 "나의 궁극적인 예술적 지향은 사람다운 삶의 가치와 세상에 있다"며 "앞으로도 역사와 현실과 현장을 기록하고 증언하는 작가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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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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