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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조상님들, 올 땐 말 타고 갈 땐 소 탄다,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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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5)

일본에서 조상의 혼을 집으로 모시는 날은 8월(지역에 따라 7월)에 있는 ‘오봉(お盆)’ 한 차례뿐이다. 전국적으로는 양력 8월 15일을 전후해서 3~5일 동안이다. 조상을 기리는 날로는 봄가을 두 차례 ‘오히간(お彼岸)’이라는 것이 있긴 하다. 이때는 성묘만 하고 조상의 혼을 집으로 모시지 않는다. 한국과 같은 제사는 없다.

일본에서 조상의 혼을 집으로 모시는 오봉의 옛날 풍습에 이용된 제등과 제등 안의 양초와(좌), 조상의 혼이 깃든 양초를 제등에 넣어 제단에 모신 모습(우) [사진 양은심]

일본에서 조상의 혼을 집으로 모시는 오봉의 옛날 풍습에 이용된 제등과 제등 안의 양초와(좌), 조상의 혼이 깃든 양초를 제등에 넣어 제단에 모신 모습(우) [사진 양은심]

지금은 드물어진 옛날 오봉의 풍습을 소개해 본다. 집에서 가까운 절에 조상을 모시던 시대의 이야기이다. 영혼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해가 질 무렵, 제등과 양초를 준비하고 집을 나선다. 묘 앞에 있는 제단에 양초를 놓고 불을 붙인다. 영혼이 깃들기를 기다려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제등 안에 넣고 집으로 돌아와 제단에 모신다. 오봉 기간이 끝나는 날 다시 제등 안에 촛불을 넣고 묘로 가져가 불을 끄고 돌아온다.

조상 혼을 집으로 모시는 '오봉'은 1년에 한 차례 뿐 

조상의 혼이 길을 잃지 않고 집을 찾아 올 수 있도록 불을 붙여가는 마중 불(좌), 영혼이 가는 길을 밝히는 배웅 불의 꺼지는 모습(우). 도쿄에서는 이 꺼진 불 위를 3번 왕복하면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풍습이 있다. [사진 photo AC]

조상의 혼이 길을 잃지 않고 집을 찾아 올 수 있도록 불을 붙여가는 마중 불(좌), 영혼이 가는 길을 밝히는 배웅 불의 꺼지는 모습(우). 도쿄에서는 이 꺼진 불 위를 3번 왕복하면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풍습이 있다. [사진 photo AC]

보기 드물다고는 하나 지금도 집에서 가까운 곳에 묘가 있는 사람들은 영혼을 모시러 가기도 한다.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은 집에 제등을 달아 대신한다. 절의 종파에 따라서는 혼을 마중하는 마중 불(迎え火/무카에비)과 배웅하는 배웅 불(送り火/오쿠리비)을 지핀다. 아파트처럼 불을 지필 수 없을 경우 제등만 켜 놓는다. 어디까지나 조상의 혼이 길을 잃지 않도록 하는 데에 의미가 있다.

도쿄에서는 마중 불과 배웅 불이 꺼진 위를 3번 왕복하면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풍습도 있다. 나 또한 신혼 때부터 매년 시어머니 말을 듣고 건너가고 건너오고 했다. 시어머니 말로는 특히 ‘여자한테 좋다’고 했다. 믿거나 말거나 이겠지만, 돌아가신 시어머니도 큰 병치레 없이 살다 가셨고, 나 또한 아직은 건강하다.

대표적인 배웅 불로 교토의 고잔오쿠리비(五山送り火,8월16일)가 있다. 산등성이에 큰 대(大)자로 불을 지펴 영혼이 가는 길을 밝힌다. 여름철 교토 여행에서 본 적이 있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단순한 축제가 아닌 조상의 혼을 보내는 의식이므로 환성을 지르기보다는 조용히 합장하는 것이 바른 관람 자세라고 한다.

오이로 만든 말과 가지로 만든 소. 이승으로 돌아올 때는 빨리 달리는 말을 타고 오고, 저승으로 돌아갈 때는 느리게 걷는 소를 타고 간다고 한다. [사진 photo AC]

오이로 만든 말과 가지로 만든 소. 이승으로 돌아올 때는 빨리 달리는 말을 타고 오고, 저승으로 돌아갈 때는 느리게 걷는 소를 타고 간다고 한다. [사진 photo AC]

영혼을 모시러 가는 일 외에 또 하나 준비하는 것이 있다. ‘오이로 만든 말’과 ‘가지로 만든 소’다. 시어머니에게 왜 ‘말과 소’냐고 물었었다. 이승으로 올 때는 빨리 오고 싶어 말을 타는 것이고, 저승으로 돌아갈 때는 가기 싫어 걸음이 늦은 소를 타는 것이라 했다. 왠지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야기이다.

요즘은 어린 손주들이 조부모가 좋아한 것을 만들기도 한다고 한다. 오이와 가지로 전투기, 비행기, 장갑차 등을 만든다. 옛 풍습을 자유롭게 이어가는 모습은 놀랍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오봉에는 타지에 있던 가족과 친지들이 고향으로 향한다. 한국의 설과 추석 때처럼 전 국민의 대이동이 일어난다. 역과 공항은 귀성객과 여행객으로 붐빈다. ‘오봉 휴가’라 해 민간에서는 전국적으로 여름 휴가철이다. 학생들의 여름방학 기간이기도 해서 가족 여행에 안성맞춤이다. 핵가족이 많은 요즘 일찌감치 성묘를 마치고 해외로 떠나는 여행객으로 공항이 넘쳐나는 모습은 매년 벌어지는 광경이다.

오히간, 양력 3월과 9월 두 차례 열려 

오봉 제단 모습. 제등을 켜고 가을에 수확한 과일 등을 올린 제단의 모습이다. [사진 photo AC]

오봉 제단 모습. 제등을 켜고 가을에 수확한 과일 등을 올린 제단의 모습이다. [사진 photo AC]

오봉처럼 조상을 기리는 행사인 오히간(お彼岸)은 양력 3월과 9월에 열린다. 춘분과 추분을 가운데 두고 전후 3일씩 일주일간이다. 이 기간에 가족과 친척들이 모여 성묘를 한다. 2018년 가을 오히간은 추분인 9월 23일을 사이에 두고, 9월 20일에 시작해 9월 26일에 끝난다. 한국의 추석과 같은 시기였다.

오히간 하면 떠오르는 속담이 있다. ‘더위와 추위도 피안까지(暑さ寒さも彼岸まで/아츠사 사무사모 히간마데)’. 추위는 3월의 피안 즈음에는 물러가고, 여름의 무더위도 9월의 피안이면 한풀 꺾인다는 말이다. 해마다 무더위가 심해지는 걸 보면 이 속담만큼은 사라지지 않고 오래도록 남아있음 직하다.

그렇다면 일본의 설(お正月/오쇼가츠)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살아있는 자손을 위한 명절이다. 처음 일본에 왔을 때는 오쇼가츠도 ‘조상을 기리는 날’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명절’ 하면 조상을 기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시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오쇼가츠 준비를 하고 손님을 치르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친척이 모여 새해 인사를 하고 덕담을 나눈 후 먹고 마실 뿐이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제사를 지내는 것도 아니고, 성묘를 간다는 이야기도 없다. 몇 년 동안 그렇게 지내면서 서서히 알게 됐다. 오쇼가츠는 새해 일 년 동안 살아있는 사람과 집을 지켜줄 신(年神様/도시가미사마)을 모시는 명절이라는 것을. 그 신을 맞이하기 위해 섣달 그믐날이 오기 전에 깨끗이 청소를 끝내고, 신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는 장식을 내걸고 1월 1일을 맞이하는 것이다.

올해는 일본의 가을 오히간 기간이 한국의 추석과 겹쳤다. 왠지 두 나라가 가깝게 느껴졌다면 나만의 억지일까?

양은심 한일자막번역가·작가 zan32503@nif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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