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노골적인 '보수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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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32강전 2라운드> ●박정환 9단 ○시바노 도라마루 7단

7보(96~109)=시바노도라마루 7단은 엉뚱하게 우상으로 손을 돌려 꼬인 실타래를 풀어간다. 박정환 9단의 귀신 같은 수읽기로 인해 중앙에서 역공에 실패한 뒤로는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나 보다. 일단 96으로 나온 다음 98로 묘한 자리에 돌을 놓았다.

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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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은 여기에서 한 수 받아둘 수밖에 없는데, 손을 떼면 '참고도' 백1로 당장 나와, 수가 난다. 흑이 99로 지켜두자 100으로 상변을 가른다. 아직은 백의 의중을 알 수 없다.

박정환 9단은 급한 호흡을 거두고 반상을 천천히 훑어본다. 지금 당장 흑이 급한 자리는 없다. 어느 정도 우위를 확보해 두었고, 이제부터는 무리하지 않으면서 실리를 착실하게 지켜나가는 '보수파'가 되면 된다.

참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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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박정환 9단은 101로 우하귀를 굳혔는데, 이는 페이스북이 개발한 인공지능(AI) '엘프고'의 예상보다도 훨씬 보수적인 수였다. 엘프고는 a 혹은 b로 우변을 넓게 벌려 실리를 차지할 것을 추천했다. AI 추천보다도 더욱 노골적으로 실리를 지킨 101은, 박 9단이 자신의 형세를 상당히 낙관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와 달리 상대와 차이를 좁혀야 하는 시바노 7단은 이래저래 마음이 급하다. 104로 어깨짚은 다음, 상대의 집짓기를 방해하기 위해 108로 기습적인 저공비행을 감행했다. 여기에서도 박정환 9단은 109로 차렷. 시종일관 매우 두터운 행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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