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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는 다른 기관과 구성에 협의할 일 없다”는 헌재 소장 퇴임사가 눈길 끄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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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퇴임식을 마치고 직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김민상 기자

19일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퇴임식을 마치고 직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김민상 기자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이 19일 퇴임식에서 대법원 재판거래 의혹 수사를 염두에 둔 발언을 했다. 이 소장을 비롯해 김이수·김창종·안창호·강일원 헌법재판관 등 5명은 이날 함께 임기를 마쳤다.

 이 소장은 이날 퇴임사를 통해 “‘떠날 때는 말없이’가 이 자리에 맞는 말이지만 더는 기회가 없으니 몇 마디 드리겠다”며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구성에 관하여 어떠한 권한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재판관 지명 권한을 가진 국가 기관의 입김에 흔들릴 것을 염려하는 시각이 있다”며 “하지만 그 권한이 없는 까닭에 헌법재판소는 다른 기관과 구성에 관해 협의할 일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헌법재판의 독립성에 대한 반석 같은 신념을 더욱 강고하게 가져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소장의 ‘다른 기관과 구성에 관해 협의’라는 발언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을 세우기 위해 외교부 등 다른 부처와 재판 거래 정황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지난 5월부터 대법원의 재판거래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중앙홀에서 열린 사법부 70주년 행사에 참석해 있다.   오른쪽부터 이진성 헌법재판소장, 문 대통령, 김명수 대법원장.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중앙홀에서 열린 사법부 70주년 행사에 참석해 있다. 오른쪽부터 이진성 헌법재판소장, 문 대통령, 김명수 대법원장. [연합뉴스]

 김이수 재판관은 퇴임사에서 통합진보당 해산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김 재판관은 “한국사회에서 입지가 미약했던 진보정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고뇌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며 “대통령 탄핵 사건의 변론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팽팽한 긴장의 시간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아직도 우리 사회는 차별과 편견 그리고 소외로 인해 그늘진 곳이 있다”며 “헌법의 따뜻한 기운이 어둡고 그늘진 곳에도 고루 퍼져나가 이 나라가 더욱 건강하게 발전하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말했다.

 안창호 재판관은 남북정상회담 분위기를 맞아 “북한 땅에서도 자유롭게 원하는 것을 말하고 자유롭게 신앙하며, 결핍과 공포로부터 자유로운 그런 곳이 되는 꿈이 있다”고 말했다.

 재판관 5명 퇴임으로 헌재는 과반 공석 사태를 맞았다. 후임 재판관 인선이 마무리되지 못해 당분간은 4인 체제로 헌재가 운영될 가능성이 크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마친 유남석 헌재소장 후보자와 김기영·이영진·이종석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본회의 표결은 이르면 20일 오후 2시 이뤄질 예정이다. 만약 이날 표결이 무산될 경우 재판관 공석 사태는 길어진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명한 이석태·이은애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임명도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을 둘러싼 여야 대립으로 지연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정치 중립과 위장전입 문제를 들어 두 후보자가 부적격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20일까지도 국회가 보고서를 송부하지 못하면 대통령이 헌법재판관을 그대로 임명할 수 있다.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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