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상황 민감하게 투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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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 12일 응모작 접수를 마감한 89년도 신춘 중앙문예가 예심·본심을 마치고 89년 원단 지면을 통해 당선자들을 데뷔시키는 일만 남겨놓고 있다. 새해 첫날 뭇사람들의 각광을 받으며 데뷔할 몇 명의 당선자들보다 그 꿈을 위해 내년에도 신춘문예의 좁은문을 두드릴 수천수만명의 지망생들을 위해 89년도 신춘 중앙문예 응모현황 및 작품경향을 분석해 본다.
89년도 신춘 중앙문예 응모자수는 5개 부문 총7천여 명에 이르렀다. 이를 부문별로 보면 시 6천여 명, 시조 5백여 명, 단편소설 3백92명, 희곡 56명, 평론 27명의 순으로 총 응모자수는 전년과 비슷하나 단편소설에서 50여명이 늘어난 게 특이하다. 또 예년과 마찬가지로 타 부문에 비해 전문성이 요구되는 희곡·평론부문에는 소수의 응모자가 모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올해 응모작품의 전반적 경향은 80년대의 급격한 시대 변화상을 그대로 드러낼 정도로 사회상황을 반영하려는 의욕이 두드러졌다는 것이 특징이다.
소설에서는 장르의 특성상 특히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져 광주 민주화운동을 시발로 최근까지 일련의 민주화운동을 기본축으로 노사갈등·빈부격차·군 문제·5공 비리, 심지어 청문회·인신매매까지 다룬 작품들이 눈에 띄었으나 대부분 너무 사회문제에만 집착, 앙상한 주장에 머무른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예심을 통과한 15편의 작품 중에는 이러한 사회의식이 개인적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작품들이 눈에 띄어 올 신춘문예의 큰 수확으로 기록되며 사회에 대한 총체적 전망이 서고 있음을 입증했다. 본심에서는 이러한 작품 중 사회적 문제가 어떻게 개인적 삶에 되돌려지고 있는가, 그 문제에 작가가 정면으로 부닥쳐 유형적으로가 아닌 개인적으로 고심한 흔적이 있는가, 그리하여 감동을 줄 수 있는가가 당락의 관건이 됐다.
소설과 만찬가지로 시에서도 현실을 반영한 작품이 많이 눈에 띄었다. 또 현실을 다루되 직설적이 아니라 사회의 제모순이 민중의 삶에 끼친 애환 등을 통해 다루고 있어 시가 산문화·장형화되는 경향을 드러냈다. 반면 전통적 서정에 현실의 무게를 감춘 서정시도 많이 나타났다. 예심을 통과한 50편의 시 중 서사구조를 통해 민중적 삶을 노래하며 분단 모순을 드러낸 작품이나 서정적 공간과 현실적 공간을 중첩시킨 우수한 작품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서정적 공간에만 머무르거나 이미지의 지향점이 관념적으로 확산돼버린 시들은 위축된 느낌이다.
반면 시조와 희곡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침체국면을 면치 못했다.
시조에서는 전통적 정서에 안주, 오늘의 정서를 살려내지도 못했고 시대정신을 반영하느라 잣수 맞추기에만 급급한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전통적 서정의 세련미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당대의 시대 정신을 담는 각고의 노력이 요구되는 장르가 바로 시조라는 평이다.
희곡은 총 56편 밖에 안 되는 응모작품 중 도대체 희곡이 뭔지도 모르는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희곡은 무대·인물·사건 등이 총체적으로 구성돼야 하는데도 인물의 대화나열로만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희곡을 쓰기 전에 희곡의 특성에 대한 이해와 함께 무대에 많이 접해보라는 지적이다. 시조와 희곡의 침체 현상 타개를 위해선 시·소설 응모자들이 이 부문에 눈을 돌려봄직도 하다. 상대적으로 응모자수가 적고 침체된 부문에 응모함으로써 좀더 쉽게 문단에 나올 수 있고 나아가 이 부문의 발전에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평론은 원론보다 작가론·작품론이 대부분이었고 고른 수준을 유지했다. 평론에서는 우선 가치 있는 대상 선정이 중요하며 또 신인다운 패기가 중요하다. 많이 언급되지 않은 대상을 다뤄봄직하며 선행비평이 많을 경우 도전적 관점을 제시, 섬세한 세부접근으로 뒷받침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전체적으로 보아 신춘문예에서는 장르상 기본적 문법을 무시하거나 작품을 이끌어 나가는 통일적 전망이 서있지 않으면 예심을 통과할 수 없다. 일단 예심을 통과한 작품은 총체적 형상성과 함께 「새로움」으로써 당락이 가려진다. 이중에서도 최종의 기준은 「새로움」이다. 신춘문예가 다른 등단제도에 비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덕목은 아류를 배제한 신선함이기 때문이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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