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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강제 징용 재판거래?…있을 수 없는 구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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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열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난 9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왼쪽은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대법원 건물. 김민상 기자, [연합뉴스]

주진열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난 9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왼쪽은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대법원 건물. 김민상 기자, [연합뉴스]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낸 현직 교수가 최근 검찰의 대법원 재판거래 의혹 수사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재판연구관 출신 주진열 교수 작심 비판 #"대법원장과 대법관, 상명하복 관계 아니다" #검찰의 재판거래 의혹 수사에 의문 제기 #"연구관들, 상고기각·파기환송 두 의견 다 제시"

이용훈 대법원장(2008년)과 양승태 대법원장 재임 시절(2014년) 두 차례 대법원에서 재판연구관을 지낸 주진열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9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대법원 내부 의사소통 구조를 설명했다. 주 교수는 “대법원장은 대법관과 사건 심리에서 동등한 지위로 특정 결론을 요구할 수가 없다”며 “대법원장이 (재판) 결론을 요구한다고 하더라도 상상도 할 수 없고 대법관이 따를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대법관들이 견해가 다르면 얼굴을 붉히며 서로 싸우기까지 한다”고 덧붙였다.

주 교수의 주장이 주목을 받은 건 이달 초 자신의 페이스북에 외교부와 대법관 간 재판 거래 의혹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글을 올리면서다. 지인들에게만 공개된 페이스북 글은 입소문으로 퍼지면서 언론에까지 공개되기도 했다. 검찰은 최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소환해 강제징용 재판을 지연시키기 위해 2013년과 2014년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과 차한성·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이 비밀 회동을 했는지 여부를 수사 중이다. 대법원과 외교부 고위 관계자들은 침묵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내부 직원이었던 주 교수가 ‘다른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주 교수는 당시 페이스북을 통해서 “외교부는 국내 찬반 견해를 정리해 중립 견해를 제시했고 언론보도와 달리 파기환송 견해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대법원 기밀 자료를 무단 반출한 혐의를 받고 있는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지난 11일 검찰이 압수수색 중인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 들어서고 있다. [뉴스1]

대법원 기밀 자료를 무단 반출한 혐의를 받고 있는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지난 11일 검찰이 압수수색 중인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 들어서고 있다. [뉴스1]

이날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도 검찰 수사에 대한 반박은 계속됐다. 최근 대법원 재판 자료를 반출한 유해용(62·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변호사가 관련 자료들을 모두 폐기해 검찰과 법원의 갈등이 커지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주 교수는 이에 대해 “연구관이 작성한 보고서는 해당 사건 상고기각이나 파기환송 결론 중에서 특정 한 개 결론만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주심 대법관이 선택할 수 있도록 두 가지 결론을 모두 제시하고 법리적 근거를 각각 여러 개 제시한다”며 “유해용 변호사가 파쇄한 연구관 보고서에는 재판거래 의혹 증거가 있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강제징용 재판연기 논란은 2012년 대법원이 사상 처음으로 일제에 강제노역에 시달려야 했던 피해자들에게 손을 들어주면서 시작됐다. 당시 판결 주심은 김능환 전 대법관으로, 1‧2심 재판부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이 없어졌다”며 미쓰비시 중공업과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 등 일본 기업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판결을 뒤집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뒤집힌 대법원 결정대로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지만 일본 기업들이 이에 불복했고 사건은 2013년 다시 대법원에 올라왔다. 대법원은 5년이 지나도록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주 교수는 이에 대해 “대법원이 재판 거래를 위해 심리를 고의로 지연시킨 것이 아니라 국제법적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늦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대해 한국과 일본 정부 해석이 다른데, 이 경우 국제 중재로 해결해야 한다”며 “대법원이 한국 정부 견해만 받아들여 일방적으로 해석하는 건 국제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 7월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넘겨 심리를 시작했다. 대법원 사건은 대법관 4명으로 이뤄진 소부(小部)에서 대개 심리하는데 의견이 엇갈려 결론이 나지 않거나 기존의 판례를 바꿔야 할 정도로 중요한 사건일 경우 13명 대법관이 모두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배당한다.

"대법원이 강제징용 배상 확정하면 국제분쟁 가능성" 

주 교수는 “전원합의체에서 강제징용 피해자가 최종 승소하면 한국 정부는 일본 기업 재산을 강제 집행할 수 있다”며 “그럴 경우 일본 정부가 국제법 위반을 주장하며 재발 방지와 피해액 배상을 요구하는 외교적 보호권도 행사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제법학자인 정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일본 정부는 자국 기업이 패소하면 국제사법재판소로 가려고 할 것이고, 국제법상 한국이 판결에서 질 확률이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이근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2013년 9월에 펴낸 『한일청구권협정상 강제징용배상청구권 처리에 대한 국제법적 검토』라는 주제의 논문에서 “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강제징용 피해자 청구권까지 포함해 양국이 합의했다”며 “사법부의 판결로 인해 국가 간에 청구권협정 위반을 이유로 새로운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2010년 3월 서울 종로구 조계종 중앙신도회 교육관에서 열린 쿠시다 신사 소장 히젠도 환수위원회 발대식. 혜문 스님(왼쪽)과 히젠도 환수위 공동 위원장을 맡은 최봉태 변호사(오른쪽)가 성명을 발표 하고 있다.[중앙포토]

2010년 3월 서울 종로구 조계종 중앙신도회 교육관에서 열린 쿠시다 신사 소장 히젠도 환수위원회 발대식. 혜문 스님(왼쪽)과 히젠도 환수위 공동 위원장을 맡은 최봉태 변호사(오른쪽)가 성명을 발표 하고 있다.[중앙포토]

"개인 피해에 대한 한일 합의는 이뤄지지 않은 것" 반론도

물론 여기에 대해선 다른 해석도 있다. 강제징용 판결에 직접 참여한 최봉태 변호사(대한변협 일제피해자인권특별위원장)는 “당시 문서를 보면 한국 정부에서 개인 피해자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지만 일본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라며 “정치적으로 양국이 타협한 것이지 법률적으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협상 과정에서 일본은 ‘도로와 철도, 댐까지 건설해서 오히려 우리가 놓고 온 자산이 많다’는 주장을 들어 보상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며 “국가 간 합의를 했으니 개인 문제는 자동으로 적용된다는 논리는 19세기 ‘국민은 국가의 부산물’이라는 사고가 깔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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