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사망한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앓았던 루게릭병과 같은 근육질병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동물실험이 절대적이다. 하지만 동물실험은 늘상 윤리적인 논쟁에 휩싸이기 마련이다. 또 동물 실험에는 성공적이었지만, 인간에겐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많다.
동물 실험에 의존하지 않고도 루게릭병을 비롯한 근육 질병의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포항공대(POSTECH) 기계공학과 조동우ㆍ김동성 교수, 최영진 박사와 한국기술교육대 박성제 교수 공동연구팀은 16일, 기존 인공근육 조직보다 최대 2배 이상 인간의 근육과 유사한 '체외 근육조직'을 재생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해당 논문은 지난 12일 국제학술지 저널 오브 머터리얼즈 케미스트리(Journal of Materials Chemistry) 표지 논문으로 게재됐다.
근육 세포 한 방향으로 정렬된 인간의 근육...최대한 비슷하도록 '기판' 제작
연구진은 체외 근육이 신체 밖에서도 최대한 인간의 근육과 비슷하게 자랄 수 있도록 '세포배양기판'을 먼저 제작했다. 인간의 몸 속 근육은 근육 세포가 한 쪽 방향으로 나란히 정렬된 것이 특징인데, 기존의 세포배양접시를 이용하는 방식으로는 재현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원하는 모양의 금속을 만들 수 있도록 '주물'을 먼저 제작하는 것과 비슷한 작업이다.
새로운 세포배양기판 제작에는 포항방사광 가속기 'X-선 리소그래피' 기술이 사용됐다. 방사광가속기는 전자를 빛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여 다양한 파장과 광도의 빛을 생산하는 ‘빛 공장’이다.
이 빛 공장에서 만들어진 고에너지의 X-선을 이용해 수십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부드러운 물결무늬를 가진 세포배양기판을 제작했다. 기판에 새겨진 물결 무늬가 실제 사람의 골격근 형태와 비슷해, 근육 세포가 한 방향으로 정렬된 형태로 자라도록 유도한 것이 핵심이다.
근육 잘 자라도록 기판 위 '세포외기질' 코팅...체내와 유사한 환경 조성
이렇게 만들어진 기판 위에는 사람의 근육 조직에서 추출한 '세포외기질'을 코팅했다. 근육 세포가 실제 인간의 몸속처럼 인식하도록 성장 조건을 만들어준 것이다. 그 결과 근육의 성장을 돕는 각종 물질과 중요 단백질들이 생성되는 것을 확인했는데, 이것이 근세포의 생존율을 높이고, 실제 체내의 근육 세포와 유사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돕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연구를 진행한 조동우 교수는 "체내 근육과 더욱 비슷한 인공 근육 재생기술을 확보했다" 며 "신약개발ㆍ바이오닉스 기술 개발 등에 사용할 수 있는 '체외 테스트 플랫폼'으로 활용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또 인공적으로 근육을 만들 수 있도록 사람과 흡사한 미세 환경을 구축한 데도 의미를 부여했다.
연구진은 또 신경·근육과 같은 복합 조직에 대한 재생을 통해, 여전히 미지의 영역인 생각-신경-근육-움직임 간 신호 전달 방법 및 체계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