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살아실제…|윤난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기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요즈음 7살짜리 큰 애와 5살 짜리 작은애가 시도 때도 없이 줄줄 외어대는 고시조다.
내용과 뜻이 뭔지도 모르는 채 그저 재미난 듯 읊조리는 모습을 대할 때마다 살아 계실 때 효도를 다하지 못한 내 부모님에 대한 자식의 도리에 진한 아픔과 후회의 감정이 온 마음에 엄습한다.
무더위가 한창이던 지난 6월, 칠순의 나이에도 그처럼 정정하시고 꼬장꼬장하시던, 그래서 몇 년은 별 무리 없이 더 사실 것만 같았던 시어머님이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살아 계신다면 한 두 번쯤은 이곳에 들르셔서 온방 가득 자욱한 담배연기를 채우면서 결코 달갑지만은 않은 어머님의 체취를 전해주셨을톈데…
이따금씩 큰애는 『대구 할머니 보고싶다 그지? 그런데 할머니는 땅속에서 어떡하지? 깜깜할 텐데….』 무척이나 걱정스럽고 이해하기 힘든 표정으로 엄마를 향한다.
『사람이 나이가 많아지면 죽는 거야. 그러면 몸은 땅속에서 썩어 뼈만 남게되지만 마음은 하느님 나라에서 천사님들과 행복하게 살게 되는 거야. 이 다음에 아빠·엄마도 할머니처럼 늙게되면 그렇게 되고, 또 지혜도 지윤이도 그렇게 되는 거야. 그래서 착하고 예쁜 마음을 지니면 하느님 나라에서 다시 만나게 된단다.』
스산한 계절 탓인지, 할머니의 기억을 애써 더듬어내려는 딸애의 정겨움 탓인지 요즈음 새삼 부모 공경의 유한성을 깨닫지 못하고 세상살기에만 분주했던 자신을 꾸짖어 본다.
『어머님, 이 다음 번에는 용돈 더 많이 드릴게요.』 작년 11월 마지막 상경하셨을 때 어머님과의 약속은 이제 지킬 수가 없게 되었다.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기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하노라.』 진작 정철이 쓴 뜻을 생활화했더라면…. 엄마의 안타까움을 알지 못하는 아이들의 음성은 커져만 간다. 계절의 바뀜 속에 어머님의 모습은 차츰 희미해져 가겠지. <서울 상계 2동 주공아파트 720동1406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