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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로 떼죽음 당한 지리산 구상나무…“멸종 카운트다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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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천왕봉-중봉의 북사면에서 나타난 고산침엽수 떼죽음. [사진 녹색연합]

지리산 천왕봉-중봉의 북사면에서 나타난 고산침엽수 떼죽음. [사진 녹색연합]

구상나무와 가문비나무 등 지리산국립공원의 고산침엽수가 기후변화로 인해 빠른 속도로 집단 고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녹색연합과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4개월에 걸쳐서 지리산 현장을 조사한 결과다.

16일 녹색연합 등이 공개한 ‘지리산 아고산대 고산침엽수 집단고사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지리산국립공원 고산침엽수의 떼죽음 현상은 지리산 전역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반야봉(해발 1732m) 정상의 구상나무와 가문비나무는 70% 이상이 고사하면서 능선과 사면 전체가 거대한 고사목 지대로 변해가고 있다. 반야봉은 제주도 한라산 등과 함께 대표적인 구상나무 군락으로 꼽힌다.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해발 1915m)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중산리 등산로 일대의 구상나무 군락도 대부분 죽어가고 있다. 2016년 7월 조사 당시 갈색과 붉은색을 띠며 고사 신호를 나타냈던 곳으로, 2년 뒤인 지난 8월 말에 다시 가보니 나무들이 거의 다 죽어 잎이 본격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지리산 고산침엽수의 집단고사현상은 2016년 이후에 더욱 가속화된 것으로 보인다”며 “중봉에서 칠선계곡 방향으로 이어진 능선과 사면부의 구상나무와 가문비나무는 80% 이상 고사한 상태로 살아있는 개체를 확인하는 것이 더 빠를 정도”라고 말했다.

“눈 일찍 녹으면서 봄철 토양수분 부족”

지리산 구상나무 고사목. [사진 녹색연합]

지리산 구상나무 고사목. [사진 녹색연합]

현장 조사 결과, 지리산의 해발 1600m 위쪽에 있는 고산침엽수 집단서식지에선 예외 없이 집단 고사 양상이 관찰됐다. 특히, 군락이 크고 밀집도가 높을수록 고사현상도 전면적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이런 집단 고사 현상이 가속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겨울철 기온 상승과 봄철 강수량 부족이 가뭄으로 이어지면서 침엽수 생장에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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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철 국립공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기후변화로 인해 눈이 2~3월부터 일찍 녹기 시작하고, 봄 가뭄까지 겹치면서 토양수분함량이 과거보다 줄었다”며 “구상나무가 생장을 시작하는 5월에 정작 수분이 부족해지면서 생장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리산 천왕봉 주변으로 대형 산사태 발생이 늘고 있다. [사진 녹색연합]

지리산 천왕봉 주변으로 대형 산사태 발생이 늘고 있다. [사진 녹색연합]

최근 지리산에 대형 산사태가 늘어난 것도 고산침엽수의 떼죽음과 상관관계가 높다는 분석이다.

녹색연합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지리산 천왕봉을 중심으로 35개소가 넘는 곳에서 산사태 발생했다.

서 전문위원은 “2013년 이후부터 대형 산사태가 늘고 있는데 대부분이 침엽수가 집단 고사하는 고도와 일치한다”며 “폭우 때 죽어 있거나 죽어가고 있는 침엽수의 뿌리 밑으로 물이 스며들어 토양층 사이에 균열이 발생하면서 산사태의 발생을 촉진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멸종 카운트다운 들어갔다” 

구상나무. [사진 동북아생물다양성 연구소]

구상나무. [사진 동북아생물다양성 연구소]

이른바 ‘크리스마스트리’로 불리는 구상나무는 한국 고유종인 상록침엽수로 지리산과 한라산 등의 고지대에 서식한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할 만큼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소나무과에 속하는 가문비나무 역시 백두대간의 가장 높은 고도에 서식하는 대표적인 고산침엽수다. 특히, 지리산은 지구상에서 가문비나무가 자생하는 최남단 서식지로 자연적 가치가 높다.

서 전문위원은 “이런 기후변화 속도대로라면 구상나무 멸종은 벌써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고 봐야 한다”며 “지금이라도 환경부가 구상나무를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해 본격적인 관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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