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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마크]'거지갑'이라 불리는 박주민 "촛불 구호 벌써 잊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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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의 겉모습만으로 속한 정당이나 가치관을 알아채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박주민(45) 의원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겉모습이 자기소개서다.

그의 양복 왼쪽 깃에는 국회의원 금배지 외에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나비 브로치, 제주 4.3 항쟁 희생자의 아픔을 상징하는 동백꽃 배지 그리고 ‘청소년에게 참정권을’이라고 적힌 배지가 붙어 있다. 오른손 팔목에는 문재인 지지자들이 만든 고무 팔찌와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팔찌, 스텔라데이지호 희생자 추모 팔찌가 있다.

배지와 팔찌는 그의 이념 지향과 가치관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헝클어진 머리와 피곤에 절어 반쯤 내려앉은 눈꺼풀은 ‘성실함’ ‘워커홀릭’(일 중독자)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외모에 신경을 안 쓰는 탓에 인터넷에서는 ‘거지 갑’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박주민 의원 양복에 달린 배지와 브로치. 윤성민 기자

박주민 의원 양복에 달린 배지와 브로치. 윤성민 기자

박 의원은 지난달 25일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최다 득표율로 1위 최고위원에 뽑혔다. 40대 초선 의원으로는 처음이다. 최고위원이 된 지 3주 정도 지난 지난 14일, 그는 오전 8시 30분 민주당 당 대표 회의실에 도착했다. 최고위원회의에 가장 일찍 출석했다. 그는 이해찬 대표와 단둘이 20분 정도 얘기를 나눴다. 박 의원은 “정책에 대한 의견 등을 말씀드렸다”고 했다. ‘부지런한 초선 의원’에서 ‘당 대표와 일대일로 대화하는 최고위원’이 된 그를 밀착마크했다.

최고의원 되고 더 바쁘겠다. 하루에 몇 시간 자나.
많이 바빠지긴 했다. 그런데 최고위원도 최고위원이지만, 최근 딸이 생겼다. 태어난 지 78일 됐다. 집에 가면 아기 젖 먹이고, 재우고, 새벽에 또 울면 달래고, 젖 먹이고 그런 일을 한다. 오늘은 아기를 자정 좀 넘어서 눕혔는데 새벽 3시에 깨더라. 그 이후로 한숨도 못 잤다. 잠이 부족해서 쪽잠을 잔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제3차 정기 전국대의원대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뉴스1]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제3차 정기 전국대의원대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뉴스1]

전당대회 연설 때 한국사회를 ‘불공정ㆍ불합리ㆍ불평등’으로 규정했는데.
소득주도성장을 얘기할 때 왜 그것이 필요했는지 많은 분이 잊은 것 같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촛불 집회 때 시민들이 ‘박근혜 탄핵’ 외에 불공정ㆍ불합리ㆍ불평등을 없애라는 구호도 매우 많았다. 그래서 소득주도성장이 나온 것인데, 시간이 지나니 그 이유가 희미해져서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었다.
이해찬 대표와 잘 맞나.
내가 당내 소통과 교육 부분의 마스터플랜(기본계획)을 만드는 역할을 맡고 있는데, 대표가 내가 생각하는 방향이 맞는다고 힘을 실어주고 있다. 나뿐 아니라 남인순 의원은 민생연석회의를 만들고 싶다고 했고, 김해영 의원은 청년ㆍ 대학생 부분을 맡고 싶다고 했는데 대표가 밀어주고 있다. 조바심은 나지만 한번 해볼 만한 상황이다.
박주민 의원이 14일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는 "어제 쌍용차 해고 문제가 9년 만에 해결의 물꼬를 텄다는 소식을 듣고 눈을 의심했고 정말 기뻤다"고 말했다. 윤성민 기자

박주민 의원이 14일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는 "어제 쌍용차 해고 문제가 9년 만에 해결의 물꼬를 텄다는 소식을 듣고 눈을 의심했고 정말 기뻤다"고 말했다. 윤성민 기자

박 의원은 지난해 쓴 책『별종의 기원』에서 자신이 변호사, 국회의원을 꿈꾸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구청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고 철거민들과 같이 돌아가는데 내가 그분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데 처절한 무력감을 느꼈어요. 그때 처음 ‘내가 변호사였다면?’이라는 상상을 해봤어요.”
“변호사로 사회운동을 하면서 한계를 많이 느꼈습니다. 일개 운동가로서의 무력감도 많이 들었고요.”
그가 한 단계 도약을 고민했던 순간엔 무력감이라는 전조 증세가 있었던 셈이다.

최고위원 도전 계기도 ‘무력감’이었나.
최고위원 선거 유세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새로운 경제 정책 등을 성공적으로 뒷받침하려면 여당으로서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계속 얘기했다. 그게 잘 안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최고위원에 도전했다.
당이 제대로 안 되고 있었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어떤 정책을 수립할 때 많은 의견이 정부에 전달돼 정책의 세밀함이 높아져야 하고, 결정된 정책은 국민에게 지속해서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그런 역할을 여당이 해야 한다. 민주당이 여당이 된 뒤 그 역할을 잘 못 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제 최고위원이 됐다.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생각나는 대로 말하자면, 중소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많은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입법ㆍ정책적 노력을 하고 싶다. 또 당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당내 소통과 교육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 이 부분을 책임지고 바꾸고 싶다.(※박 의원은 요즘 독일 정당 시스템을 공부하기 위해 조성복 독일정치연구소장이 쓴『독일 정치, 우리의 대안』을 읽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맡았던 2016년 박주민 전 민변 사무차장 영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맡았던 2016년 박주민 전 민변 사무차장 영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박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인 2016년 영입했다. 문재인 정부 정책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문 대통령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국민이 체감하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이나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실망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반등 여지가 있다. 부동산 가격은 잡힌다. 시장에 강력한 신호를 줬는데도 안 잡히면 더 세게 정책을 편다는 당ㆍ정ㆍ청 합의가 돼 있다. 그리고 고용 등 각종 지표는 올 연말, 연초를 통과하면서 좋아질 것이다.
현 정부에 쓴소리하는 모습은 보기 어려운데.
소득주도성장, 남북평화 정착, 탈원전이 현 정부의 대표적인 정책이자 공격받고 있는 정책이다. 이 정책은 문 대통령과 내 생각이 똑같다. 정책의 실수가 있으면 얘기할 거다.
정부 요직에 민변 출신 인사가 많다. 민변 출신으로서 생각은.
민변은 30년 된 조직이고, 개혁적이거나 진보적인 변호사는 회원으로 가입하는 게 당연시돼 있다. 민변이 소수거나 정치적으로 고도의 통일성 가진 조직이라기보다는 개혁·진보적 변호사라면 후원금 내기 위해서라도 회원으로 가입한다. 가입 절차가 어려운 것도 아니다.
박주민 의원실 모습. 책상 위에 입법 자료와 책이 쌓여 있다. 윤성민 기자

박주민 의원실 모습. 책상 위에 입법 자료와 책이 쌓여 있다. 윤성민 기자

박 의원의 국회 사무실 책상엔 입법 자료와 책 등이 수북이 쌓여 있다. 이날 오후 민주당 청년지방의원협의회장으로 뽑힌 조동준 서천군의회 의장 등이 박 의원에게 인사할 겸 의원실을 방문했는데, 책상을 보더니 “와! 일부러 연출한 것 아니에요?”라고 농담을 던졌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최고위원이 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나.
전당대회 끝나고 당선사례를 SNS에 올리고 댓글을 꼼꼼히 봤다. 댓글 중 가장 많은 게 시민단체 활동할 때와 국회의원 된 뒤 모습에서 신뢰감을 가졌다는 댓글이었다. 두 번째는 국회의원 되고 다수의 법안을 발의하는 등 뛰어다니는 모습에 대한 평가였다. 언론이 ‘40대 세대교체론’을 말하는데 그 내용은 별로 없더라.
‘발의바리’라는 별명도 있을 정도로 법안 발의 많이 했다. 그러나 가결 건수는 적지 않나.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 중 가결 비율이 8.9%다. 그런데 나는 10%다. 국회의원 4년이 끝난 것도 아닌데 평균보다 높다. 물론 통과 많이 못 시킨 법안 많다. 그런데 국민소환제 등 국민이 좋아할 법이지만 통과되기 어려운 법을 많이 발의했기 때문이다.
정치 인생의 변곡점이 있었나.
안도했었고 기뻐한 순간이 2기 세월호 특별조사위를 만들 수 있는 사회적참사법이 통과되던 순간이었다. 정말 공을 많이 들였다. 그 법 입법이 실패하면 국회의원 그만둬야 하는 거 아닌지 생각할 정도였다.
박주민 의원이 은평구에서 열린 수재민 돕기 행사에 참석해 자원봉사자와 얘기를 하고 있다. 윤성민 기자

박주민 의원이 은평구에서 열린 수재민 돕기 행사에 참석해 자원봉사자와 얘기를 하고 있다. 윤성민 기자

박 의원은 이날 오후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은평구에서 열린 수재민 돕기 행사에 참석했다. 시민단체가 옷가지와 이불, 휴지, 샴푸 등을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었다. 한 시민단체 회원이 “짝꿍에게 사줄 옷 사세요”라고 했다. 박 의원은 아내를 ‘짝꿍’이라고 부른다. 그는 아내에게 줄 티셔츠와 카디건을 샀다. 각각 2000원씩이다. 5만원을 건네자 시민단체 회원들이 “잔돈 없다”, “2000원 더하기 2000원은 5만원 아니야?”라고 농담을 했다.

박 의원에게 “지역 주민들이 편하게 대하는 것 같다”고 하자 그는 “다른 의원보다 뭔가 더 주민들에게 해드리진 못할 거다. 다만 귀담아듣고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는 것을 알아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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