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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벌초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01호 04면

뭐든지 직접 해봐야 알게 되고 깨닫게 되는 법입니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것을 해준 사람의 노고는 또 어떤 것이었는지.

벌초도 그랬습니다. 지금까지는 작은 아버님이 매년 봄가을 해주셨는데, 이제는 연로하셔서 이번부터 저와 동생들이 맡게 됐습니다. 오랜만에 찾아간 산소, 늘 깨끗한 줄 알았던 주변은 잡풀로 무성했습니다.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사철 발 벗은 아내’의 심정으로 쪼그리고 앉아 베고, 파내고, 걷어내기를 반복했죠. ‘둘이 해도 힘든데 이걸 어떻게 혼자 하셨을까’ 하면서.

그러면서 또 배웁니다. ‘처삼촌 묘소 벌초하듯’이라는 문장의 의미를. 풀이라는 게 열심히 베고 또 베어도, 돌아서서 보면 여전히 웃자란 놈들이 다시 보이는 게,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습니다. 분명 다 베었는데 . 그러니까 벌초는 낫질 한 번에 되는 일이 애당초 아니었던 겁니다.  


‘천 삽 뜨고 허리 한 번 펴기’ 식으로 주변 흙을 퍼와 땅 고르기까지 마친 뒤에야 비로소 다듬어진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며칠 지나면 이 장면도 도로아미타불이겠지요.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자주 들러 손보는 수밖에.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만 믿을 뿐입니다. 명절 준비들 잘 하세요.

정형모 문화에디터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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