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문학|통일 민족문학 논의 입지 마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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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88년도 우리 문학은 48년 정부수립 후 40여년간의 한반도 반쪽 분단문학에서 통일문학, 나아가 세계문학을 향해 문을 연 한해였다고 할 수 있다.
7월19일 당국의 5명을 제외한 모든 납·월북작가 8·15 이전 작품 해금조치는 문학외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유실됐던 분단이전의 작품들을 복원시킴과 아울러 통일문학사적 전망을 현실화시키는 일대 전환점이 되었다.
문공부발표대로 『통일지향을 위한 적극적 관심」에서 이루어진 해금조치 이후 해금작가들의 작품 및 연구서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음은 물론 정치적 이유로 금기시 됐던 중국·일본·소련 등지의 교포작품과 함께 최근 들어 북한문학 원본까지 유입돼 남한의 반쪽 문학공간을 통일민족 문학공간으로 확산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확대된 문학공간은 우리 문단에 적잖은 당혹감을 던져준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 이러한 당혹감은 문학의 사회적 영향력 때문에 우리와 다른 이데올로기 체제의 문학에 대한 접근 및 연구를 정부가 강력히 제지해 연구가 축적되지 못한데 기인한 것이다.
때문에 「통일지향」을 위해선 이제 이데올로기에 대한 수동적 자세에서 벗어나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 위에 그들 문학에 대한 총체적 연구가 시급한 시점에 놓이게 된 것이다.
한편 8월28일∼9월2일 열린 서울 국제 펜 대회는 소련·중국 등 공산권 문인을 비롯, 펜 대회사상 가장 많은 문인들이 참가하는 성황을 이룬 가운데 세계문학 속에서의 우리 문학의 위상을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
특히 펜 대회에 참석한 소련 시인 「예프투셴코」의 중앙일보사 호암아트흘 시 낭송회는 우리 문단의 이데올로기적 장벽이 허물어짐을 실감케 했다. 그러나 구속 문인 석방 등 인권문제를 앞세운 민족문학작가회의가 불감해 반쪽대회라는 오명과 함께 미국 뉴욕 펜클럽이 지나치게 인권을 강조해 때마침 몰아닥친 반미감정과 함께 제국주의적 발상이라는 비난을 받는 등 적잖은 잡음을 남기기도 했다.
문예지의 복간·창간러시도 문단에 많은 판도변화를 가져왔다. 『창작과 비평』 『문학과 사회』『실천문학』 등의 복간은 80년대 초·중반 민중정신 및 실험정신의 첨단에서 「문학의 게릴라」로 불리며 활동하던 동인지문학을 수그러뜨렸으며 『시대문학』 『동양문학』『문학과 의식』 『현대 시 세계』 『현장문학』 『우리문학』 등의 잇따른 창간은 발표지면을 확대했고 신진문인들에게 과감히 문호를 개방, 문학의 질적·양적 확대를 가져오게 했다.
문예지들의 이러한 복간·창간러시는 문예진홍원에서 일부 문예지에만 선별 지원하던 「문예지 원고료 지원제도」 개정의 필요성을 몰고 와 일단 문예지 전부를 지원해주고 지원후의 문제는 시장경쟁원리에 맡긴다는 방향에서 현재 개정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학외적 상황변화와 함께 88년은 문학 내적으로도 상당한 변화를 보인 한 해로 평가된다.
시에 있어서는 그 동안 각기 자기세계만 강조한 인상이 짙었던 리얼리즘계열의 민중시 및 서사시와 모더니즘계열의 해체시, 그리고 전통적 서정시가 서로서로 다른 기법과 정신을 수용하는 이른바 「길트기 현상」을 보인 한해였다. 현실인식에 서정을 가미함으로써, 혹은 서정성에 현실성을 확보함으로써 시인들의 다양한 세계인식이 개성적인 정서로 나타난 한해였다고 할 수 있다.
소설에 있어서는 소재의 확산과 아울러 작가의 소설적 공간확보를 들 수 있다. 금년 들어 광주민주화운동·노동문제 ·학생운동·빨치산체험·군체험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부분들을 다룬 작품들이 나오면서 점차 소설적 공간 속에 용해되고 있는데 이는 시에 이어 소설에서도 이러한 문제들을 형상화시킬 수 있는 총체적 전망을 획득했음을 뜻한다.
한편 평단에서는 올해도 민족문학논쟁이 더욱 가열된 한해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문학의 주체, 우리사회의 기본 모순 등에서 시각을 달리하며 전개된 민족문학논쟁은 리얼리즘문학론을 좀더 치밀하고 풍부하게 하고 있지만 작품과 동떨어진 사회과학에 입각한 「이론을 위한 이론」이라는 비난도 받은 한해였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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