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도 디자인한다."
요즘 전자업계에서 유행하는 말이다. '등잔'으로 비유되는 제품 앞면보다 뒤.바닥 등의 디자인에 업체들이 공들이는 것을 뜻한다. 최근 출시된 TV.휴대전화.카메라 중 눈에 잘 띄지 않는 부분을 특이하게 만든 제품이 많다. 와인 잔 모양의 TV 받침대나 앞.뒷면에 다른 색을 입힌 휴대전화 등이 그 예다. 디자인을 차별화해 판매량을 늘리고 국내외 후발업체들의 모방을 막겠다는 게 업체들의 속셈이다.
LG전자는 받침대를 도자기.원 모양으로 만든 컴퓨터 모니터 '플래트론 판타지 시리즈'를 17일 내놓았다. "고객이 첫눈에 반하는 제품을 만들자"는 이 회사 김쌍수 부회장의 지론에 따라 화면 아랫 부분까지 신경썼다는 설명이다. 이 회사가 올 초 출시한 홈씨어터 'XH-CW9659TA'는 제품 뒤에 복잡한 전선이 없다. 무선 기능을 넣어 뒷면을 단순하게 디자인했다. 이 회사 심재진 DDM디자인연구소장은 "소비자들이 전자기기를 인테리어 용품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제품의 뒷모습과 옆모습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지난달 선보인 LCD TV '보르도'는 TV 받침대를 와인 잔 모양으로 만들었다. 받침대가 좌우로 움직여 TV 화면을 옆으로 돌려서 볼 수도 있다. 이 제품은 출시 후 한 달간 국내에서 1만5000대가 팔렸다. 이 회사의 TV 제품 가운데 한 달 판매량 기록을 세웠다. 삼성전자의 이응렬 디자인기획그룹장은 "디자인 차별화를 고민하다 보니 기존에 소홀하던 부분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 회사가 올 하반기 내놓을 예정인 레이저 프린터 'CLP 300'은 제품 뒷면에 들어가는 토너를 알록달록한 색으로 치장했다. 이 제품은 독특한 뒷모습으로 올 초 독일 '레드닷 디자인상'을 받았다.
휴대전화도 비슷한 트렌드다. 지난달 선보인 팬택계열의 슬라이드형 휴대전화 스카이 'IM-S100'는 제품 앞.뒷면의 색깔이 다르다. 단말기 앞은 회색, 뒤는 검은색이다. 삼성테크윈의 디지털카메라 '#11'은 위에서 봤을 때 카메라 본체가 물결처럼 꺾여 있다. 이 회사의 안지훈 과장은 "카메라가 손에 편안하게 잡히도록 물결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디자인 사각(死角)지대'를 없앤 제품인 만큼 기존 제품보다 값이 10~20% 비싼 경우가 많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기존 부품을 활용하지 못하고 비싼 소재를 쓰기 때문에 제조원가가 오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디자인은 제품 만족도를 높인다는 점에서 그만큼 더 비싸게 받을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홍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