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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집’의 꿈은 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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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윤정민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윤정민 산업부 기자

윤정민 산업부 기자

10년 전, 옥탑방에 살았다. 학교 근처 낡은 4층 건물이었다. 옥탑방은 조립식 건물이었다. 지붕도 벽도 부실했다. 여름엔 햇빛에, 겨울엔 한기에 너무 쉽게 뚫렸다. 주방 겸 베란다에선 종종 바퀴벌레가 쏟아져 나왔다. 집안엔 가구라고 할 만한 것도, 놓을 공간도 없었다.

5년 전, 취업한 뒤 한동안 고시텔에 살았다. 고시텔은 그냥 고시텔이었다. 종일 집에 있던 주말엔 스트레스가 평일보다 컸다. 치킨 한 마리를 시켜 영화를 보는 ‘소확행’도 쉽지 않았다. 음식을 올릴 곳이 마땅찮았다. 침대 위에 양념을 흘리기라도 하면 거대한 분노가 밀려왔다.

지금은 몇 년간 모은 돈에 대출을 얹어 작은 오피스텔에 산다. 큰 창 2개가 있고, 바퀴벌레는 3년간 한 번 봤다. 엘리베이터도 있고, 방에 책상과 밥상과 TV도 함께 있다. 옥탑방과 고시텔엔 들이지 못했던 많은 가구와 물건을 두고 산다.

그러나 옥탑방과 고시텔엔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게 있다. ‘적당한 집’에 대한 희망이다. 10년 전과 5년 전, 부동산은 너무 먼 단어였고 그만큼 무지했다. 취업하고 돈을 벌고 차곡차곡 모으면, 어느 순간 가족들과 그럭저럭 살만한 집을 갖게 될 거라 생각했다. 이제 적당히 살만한 집에 대한 꿈은 조금씩 사라졌다.

특별히 상황이 더 나쁜 것도 아니다. 물려받은 재산만 없을 뿐, 취업이 늦었던 것도 아니고, 또래 평균에 비춰 볼 때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월급을 꼬박꼬박 받고 있다. 그냥저냥 사는 것이다. 부러움을 살 정도로 떵떵거리며 살고 싶은 욕심도 없는 편이다.

그런데도 일터에서 멀리 떨어진, 지은 지 20년 넘은, 60㎡ 이하로 범위를 넓혀봐도 마땅히 살만한 곳을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계산해보니 지금처럼 돈을 모으면 회사와 멀지 않은 곳에 ‘괜찮은 집’을 사기까지 50년 이상, 출퇴근에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의 ‘적당한 집’도 20년은 넘게 걸린다. 저축을 늘리고 더 낡고 좁은 집을 찾아도 수십 년이다. 그동안 집값은 내 월급보다 더 많이 오를 것이며, 싼 집을 찾아 회사를 옮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물려받은 것 없는 내 또래 대부분이 비슷하다.

이런 상황에선 국가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정부도 평균 이상의 임금을 받아 꼬박 10년 이상 모아도 적당히 살만한 거주공간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 비정상적이라고 여긴다면, 이젠 바로 잡아야 한다. 노력을 해도 안 된다면, 그건 정부의 무능이라고밖에 할 수가 없다. 이전 모든 정부가 그랬듯. 더는 무능한 정부가 늘지 않았으면 한다.

윤정민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