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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병식 영상 분석]‘살모사’서 ‘고슴도치’ 변신…트럼프 향한 메시지

중앙일보

입력

북한이 지난 9일 진행한 열병식이 ‘고슴도치’로 바뀌었다.  지난 2월 8일 건군 70주년 열병식을 비롯해 김정은 국방위원장 집권 후 6차례 진행됐던 그간의  열병식이 대미 일발타격을 자랑하는 ‘살모사’ 열병식이었다면 9일 9·9절 열병식은 ‘공격받으면 그 이상으로 되갚는다’는 보복형 무기가 전면에 부각됐다. 북한이 9·9절 다음날은 10일 공개한 정권수립 70주년(9ㆍ9절) 열병식 영상에 등장한 각종 무기를 분석한 결과다. 영상에 따르면 병력과 무기들이 나오는 시간은 32분 57초다. 이는 지난 2월 8일 건군절 열병식 37분 52초에 비해 약 5분가량 줄었다.
 열병식에 나온 군단급 부대는 15개에서 11개 부대로, 병력 행렬 뒤를 따른 무기도 13종에서 11종으로 축소됐다. (건군 시절을 형상한 구형 무기 제외) 전차와 장갑차, 자주포(북한은 자행포) 등은 두 열병식에 동일하게 등장했다. 122ㆍ240ㆍ300밀리 방사포(KN-09) 등 수도권을 겨냥한 무기들도 변함없이 동원했다.

9일 열병식에 등장한 지대함 미사일. [사진=연합뉴스]

9일 열병식에 등장한 지대함 미사일. [사진=연합뉴스]

9일 병식에 등장한 북한의 대전차로켓 탑재 신형 장갑차(불새-3) [사진=연합뉴스]

9일 병식에 등장한 북한의 대전차로켓 탑재 신형 장갑차(불새-3)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현장을 지켜봤던 관계자들의 전언대로 전략 미사일은 이날 등장하지 않았다. 2월 열병식에선 신형 스커드 미사일을 비롯해 화성-12ㆍ14ㆍ15등 대량 살상용 공격무기를 선보였다. 대신 지대공 미사일과 지대함 미사일 등이 이번 열병식에서 부각됐다. 이는 하늘과 바다에서 북한을 향하는 미군 및 한국군 전력을 무력화하겠다는 무기다. 지대공·지대함 미사일은 공대지·공대함 미사일과는 달리 방어적 성격이 더 강하다. 같은 미사일이지만 공격형인 전략 무기에서 수비형 무기로 바꾼 것이다. 유사시엔 ‘너 죽고 나 죽기’ 식으로 미국 본토를 때리겠다는 살모사 전략에서 건들면 가시로 찌르겠다는 고슴도치 전략을 의도적으로 강조한 열병식 선전술인 셈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단 등을 만나 “더는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모라토리엄 선언의 연장선으로도 볼 수 있다.

북한이 지난 2월 8일 건군 70주년 열병식에 동원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 북한은 9일 열병식에는 공격형 미사일을 선보이지 않았다 [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2월 8일 건군 70주년 열병식에 동원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 북한은 9일 열병식에는 공격형 미사일을 선보이지 않았다 [연합뉴스]

이를 놓고 북한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자극하지 않으려 한 흔적이라는 분석이 대다수다. 북한이 대외적으로 온건한 메시지를 통해 협상 분위기를 이어 가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열병식 행사를 생중계 또는 당일 중계를 하지 않고 하루 늦게 방영한 것이나 미국이나 핵을 일절 언급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북한은 대내적으로는 긴장의 끈을 결코 늦추지 않았다. 미국과 싸워 이겨낸 북한이라는 메시지를 열병식에 담아 북·미 대화 국면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수령 체제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려 했다. 지난 2월 열병식 때와는 달리 9일 열병식에는 근위 2 어뢰정 부대, 해군사령부 제1기지, 전투비행사, 판문점 경무대, 4군단 포병부대가 행렬에 새로 등장했다.
그런데 근위 2 어뢰정 부대는 6ㆍ25전쟁 당시 4척의 어뢰정으로 미국의 순양함을 격침했다고 주장하는 부대다. 해군사령부 1기지는 북한이 미국의 간첩선이라고 주장하는 푸에블로호를 나포(1968년)했던 부대다. 이날 참가한 전투비행사들은 대형 정찰기 (EC-121기)를 격추(1969년)한 부대라고 북한 언론은 전했다. 여기에 미군(유엔사)과 얼굴을 맞대고 판문점 경비를 서고 있는 경무대와, 베트남전에 참전해 미군을 공격했던 공군부대를 등장시킨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미국과의 ‘성전’에 나선 부대를 열거해 ‘미국에 진 적도, 지지도 않는’ 수령 체제를 과시한 셈이다. 열병식 때 군악대 연주곡에 ‘우리의 총창우(위)에 평화가 있다’를 넣은 것도 그렇다.
 2월 열병식에 나왔던 군단급 부대를 대폭 축소하고,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비롯한 군지휘관 양성학교나 국방종합대, 김정일 군사연구원 등을 포함한 건 방어적 열병식이면서도 동시에 ‘지속가능한 군사 양성 체제 북한’을 보여주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있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WMD대응센터장은 “북한은 이번엔 미국의 압박을 고려하면서도 미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것을 주장하려 했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건군 70주년 열병식에 동원한 지휘차 [조선중앙TV캡쳐]

북한의 건군 70주년 열병식에 동원한 지휘차 [조선중앙TV캡쳐]

9일 북한의 정권 수립 70주년 열병식에 등장한 지휘차량 [조선중앙TV캡처]

9일 북한의 정권 수립 70주년 열병식에 등장한 지휘차량 [조선중앙TV캡처]

한편, 북한은 이날 열병지휘관의 차량을 기존 지붕이 없는 일반 지프에서 한국의 전술 지휘 차량과 같은 신형 방탄차량으로 바꿨다. 또 2월 등장했던 각급 부대 지휘관(소장, 대좌급)도 전원 교체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싸운 부대 대거 동원 '지속가능한 북한' 선전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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