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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은 사표 품고 다녀" 삼성 최초 여성 부사장 고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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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의 절반 정도는 가슴에 사표를 품고 다녔어요.

삼성그룹 최초의 여성 부사장 출신이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책방을 하나의 브랜드로 성장시킨 사업가.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최인아 최인아책방 대표의 고백은 의외였다. 하지만 가슴에 품은 그 사표 덕에 ‘왜 일하는가’ 질문할 수 있었고 자신만의 관점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최 대표가 지식콘텐츠 플랫폼 폴인(fol:in)의 9월 스튜디오 ‘왜 일하는가’에 연사로 서는 이유다.

관련 기사 : 폴인 9월 컨퍼런스 ‘왜 일하는가’ 열려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제가 ‘일을 좋아하는 사람’임을 알게 됐고 받아들였어요. ‘왜 일하는가’에 대해 모두 각자의 답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다 다르니까요. 그걸 찾는 게 중요합니다.

 '최인아책방' 최인아 대표(전 제일기획 부사장)의 모습. 중앙포토

'최인아책방' 최인아 대표(전 제일기획 부사장)의 모습. 중앙포토

직업인을 넘어 하나의 존재가 되기 위해 분투해온 그는 결국 스스로 ‘브랜드’가 되었다. “일한다는 걸 결국 브랜드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에게 ‘왜 일하는가’ 스튜디오에서 들려줄 이야기를 미리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평소 일에 관한 책을 자주 추천하시는데요, 일이라는 주제에 왜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제게 일은 평생의 화두예요. 어릴 때부터 결혼해서 앞치마를 두르고 아이를 키우는 삶은 잘 그려지지 않았어요. 그때부터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내 일’이란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요.  
‘내 일’이란 건 어떤 일인가요?
자기 에너지를 쏟아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저는 에고가 강한 사람이에요. 내 노력을 쏟아 내 생각을 표현하고, 전달하고, 나만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걸 좋아해요. 이게 없는 시간은 잘 상상이 안 돼요.  

그의 정의에 따르면, 그는 평생에 걸쳐 ‘내 일’을 해온 사람이다. 1984년 제일기획에 입사해 ‘프로는 아름답다’ 등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카피를 만들어내며 삼성그룹 최초로 여성 부사장이 됐다. 2012년 은퇴 후엔 자신의 이름을 딴 책방을 열며 독립서점 열풍의 진원지가 됐다. 회사원과 책방주인이자 사업가, 어떤 일이 그에게 더 잘 맞을까.

일은 생계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 말고도 여러 의미가 있어요. 저는 회사 다닐 때도 제 일이 월급 이상의 의미가 있길 바랐죠. 그때의 경험이 내 안에 켜켜이 쌓였어요. 그건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내 것으로 남는 것이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지 않고, 그때의 일과 지금의 일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내 일을 찾아 회사를 떠나고 있어요. 퇴사 열풍이 불 정도죠.
기존 세대가 꾸려놓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까요. 시스템과 일하는 방식, 조직 문화 등 조직에 문제가 많아요. 젊은 친구들도 그걸 자각하게 됐고요. 그래서 회사 일을 곧 스트레스로 여기고,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 분위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조금 슬퍼요. 인간의 삶에서 가족·사랑·연인 같은 것들은 굉장히 중요하죠. 저는 일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7일 중 5일은 일하며 보내잖아요. 일하는 시간은 내 인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인생이 너무 짧잖아요.
일은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시는군요?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에요. 그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어요. 경력의 대부분을 광고 회사에서 보냈는데도, 일하는 내내 ‘광고가 무슨 의미가 있지’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사표를 품고 다녔어요.  

성공한 그 역시 ‘이 일이 내게 맞는 걸까’ 의심했고, ‘회사를 그만두는 게 좋지 않을까’ 고민했다고 한다. 확신이 없는 불안함은 지금의 직장인과 다르지 않았다는 거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부터 광고회사에서 일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가 원했던 건 ‘내 생각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일’이었고, 기업이 여성을 뽑지 않던 시절 그런 자리는 많지 않았다. 여자를 뽑는다는 얘기에 들어간 게 제일기획이었다.

“카피라이터(copy writer)를 뽑는다는 채용공고를 봤는데, 그게 뭔지 몰라도 ‘라이터’가 붙어 있으니 뭔가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어쩌다 광고인이 된 셈이죠. (웃음)”

최인아책방

최인아책방

그런데도 30년 동안 광고 일을 하셨어요.
14년 차쯤 됐을 때 이게 천직이란 걸 깨달았어요.
어떻게 깨닫게 되셨나요?
계속 질문했어요.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고 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그 질문 끝에 내가 하는 일은 하나의 브랜드를 성장시키는 것이고, 그 브랜드가 제품 브랜드가 아니라 나 자신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나의 브랜드가 성장하는 것처럼 저 또한 일을 통해 성장했으니까요. 모든 존재가 곧 하나의 브랜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브랜드란 뭔가요?
시간이 흐르면서 가치가 쌓이는 게 브랜드고, 가치를 쌓아가는 게 브랜드를 만드는 일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나이를 먹으면서 가치를 쌓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죠. 저 같은 사람은 성숙기 브랜드라면, 막 사회에 나온 사람은 신규 브랜드, 몇 년 일한 사람은 성장하는 브랜드죠.
자기 자신을 제품 브랜드처럼 알리고 홍보해야 한다는 건가요?
그것보다 장기적으로 핵심 가치를 쌓아간다는 게 중요합니다. 단기간 반짝 돈을 벌 생각이라면 브랜드는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다릅니다.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자리 잡을 수 있는 기초를 만들어야 해요.  

하나의 브랜드처럼 인간도 나이가 드는 내내 성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성장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꼰대’라고 부르죠. 젊을 때 습득한 걸 가지고 평생 사는 사람이요.

결국 일을 한다는 건 성장하는 과정일까요?
학생일 땐 학년이 올라가면서 성장한다면, 사회인은 일을 하면서 성장합니다. 일이란 생업을 넘어 성장의 기회인 거죠. 일은 혼자 하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나와 다른 생각·기질·경험을 가진 사람과 부딪치며 갈등하고 좌절하고 때로 실패하고 성공하면서 배웁니다. 잠재되어 있었지만 몰랐던 능력을 알아채기도 하고요.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안될 것 같다고 생각했던 문턱을 넘어보기도 합니다.
스스로를 브랜드로 바라보고 성장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반적인 질문에 ‘나’를 주어로 넣어보면 좋겠어요. 사회적으로 강요된 생각을 자기 생각이라고 믿는 사람이 의외로 많아요. 나한테 중요한 게 뭔지 찾아야 해요. 그러려면 ‘나’를 중심에 놓고 질문해야 하죠. 다른 사람들이 ‘돈’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럼 이렇게 물어야 해요. '나는 왜 돈을 벌어야 하지?'

최인아책방에는 ‘혼자의 서재’란 공간이 있다. 혼자 자신에 대해 사색하는 공간이다. ‘나’를 주어로 살아온 그의 인생이 곳곳에 묻어있는 최인아책방은 그곳을 찾은 이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질문하는 게 가장 중요한 거라고 말이다.

이번 컨퍼런스에서 사람들이 어떤 걸 얻어가면 좋을까요?
강연할 때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좋은 만남은 어떤 답을 주기에 앞서 나를 흔들어 놓는다’인데요, ‘왜 일하는가’란 질문에 천착하면 사이다 뚜껑을 열었을 때 기포가 올라오듯 내 안에서 여러 질문이 올라올 거예요. 컨퍼런스에서 답을 찾기보다 생각의 경계를 넓히고 깊게 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한마디 한마디에서 생각의 깊이가 묻어나는 최 대표의 더 많은 이야기는 오는 20일 오후 7시 서울 성수동 카페 월 닷 서울(구 레 필로소피)에서 만날 수 있다. 티켓은 폴인 사이트에서 구매할 수 있다.

노희선 에디터 noh.hees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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