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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기자서 돌연 유학길, 전설의 요리사된 그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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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원래 기자였다. 그것도 사건을 쫓고 비리를 캐내는 사회부 기자였다. 그런데 돌연 전세보증금 1700만원을 들고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라 요리사가 됐다.

사회부 기자에서 전설의 요리사로... 박찬일 셰프가 전하는 '장인의 길'

‘글 쓰는 셰프이자 요리로 미학하는 셰프’로 불리는 박찬일 셰프 얘기다. 박 셰프가 요리사가 된 데엔 운명이나 철학적 고뇌가 있을 것만 같지만, 그는 “현실적인 선택이었다”고 했다.

글 쓰는 게 좋아서 기자가 됐지만, 사람을 만나 진실을 캐내는 건 고역이었어요. 혼자 할 수 있는 찾다가 요리사가 됐죠. 뒤늦게 시작해 빨리 독립할 수 있는 게 이탈리아 음식이라 그걸 택했고요. 한식이나 중식·일식 셰프는 프라이팬 잡는 데만 몇 년 씩 걸렸거든요.

서울 마포구 서교동 '로칸다 몽로'에서. 사진 박찬일 셰프

서울 마포구 서교동 '로칸다 몽로'에서. 사진 박찬일 셰프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요리사가 된 지 20년. 그는 ‘몽로’ ‘광화문국밥’ 등 인기 식당을 여럿 낸 성공한 오너 셰프이자, 전설이 된 오래된 식당을 찾아다니며 역사를 기록한 <백년식당><노포의 장사법> 등 베스트셀러 작가로 스스로가 ‘전설’이 됐다.

'일의 의미'를 묻기 전에 '일하지 않는 것의 의미'를 물어야 합니다. 그래야 의미있게 일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저는 생계를 위해 일해요. 그저 할 뿐이죠. 여건만 되면 놀고 싶습니다. 다 그렇지 않나요?(웃음) 

박찬일 셰프는 지식 콘텐츠 플랫폼 폴인(fol:in)이 준비한 9월 스튜디오 ‘왜 일하는가’에 연사로 선다. 일의 의미를 찾는 직장인에게 일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풀어놓기 위해서다.

관련 기사 :폴인 9월 컨퍼런스 ‘왜 일하는가’ 열려

이탈리아에서 유학하셨는데요, 이탈리아 요리의 정수는 뭔가요?
즐겁게 요리한다는 겁니다. 제가 유학길에 올랐던 20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요리사는 3D 업종이었어요. 요리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요리사가 된 사람들이 많았죠. 하지만 이탈리아 요리사는 달랐어요. 좋은 재료를 가지고 즐겁게 만든 흥미로운 결과물이 요리였어요. 그리고 그 결과물을 사람들은 존경하고 애정했고요.
재미있고 즐거워서 요리하시나요?
물론 요리하는 일을 재미있고 즐겁습니다. 하지만 저는 노는 게 더 좋아요. 여건만 된다면 놀고 싶어요. 하지만 그럴 수 없어서 일하는 거죠. 기왕이면 재미있는 일을 하려고 요리를 하는 것이고요.
셰프님께 일이란 현실과 이상의 절충인가요?
모든 일은 적성에 안 맞을 수밖에 없어요. 적성이라는 게 뭔가요? 사회와 제도가 요구하는 겁니다. 직업 선택지 중에 백수가 있나요? 사회는 백수는 적성일 수 없다고 말해요. 하지만 제 적성은 백수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어요. 다만 누릴 수 없을 뿐인 거죠.
셰프님은 왜 일하시나요?
먹고 살기 위해서요. 그 와중에 그나마 나에게 맞는 차악과 차선을 찾는 게 제가 해온 일이고, 우리 모두가 하고 있는 일이죠.

그는 인터뷰 내내 “직업은 신성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일의 의미에 천착하는 것만큼 일하지 않는 것의 의미를 고민해야 의미 있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일의 의미’를 질문합니다. 그리고 그 끝에 퇴사를 결정합니다.
수많은 직장인이 일의 의미를 찾아 퇴사하는 건 역설적으로 일하지 않는 것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한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생의 의미를 찾는 인도의 수행자도 생활해야 한다는 겁니다.
무슨 뜻인가요?
일의 의미를 찾아 퇴사해도 먹고 살아야 한다는 대명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겁니다. 워크라이프밸런스를 추구하는 흐름은 생계 때문에 퇴사하지 못하는 수많은 이들이 찾아낸 궁여지책이고요. 사실 삶이 다 그렇습니다. 묘수고 꼼수에요. 퇴사하지 못하고 워라밸을 추구한다고 기죽을 필요 없습니다. 다만 삶과 일의 균형을 찾을 때 일이 아니라 삶에 방점을 찍으라고 말하고 싶어요.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박 셰프는 요리사이기보다 철학자였다. 그가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같은 책을 꾸준히 펴내며 오래된 식당에 천착하는 이유도 있을 것 같았다.

박찬일 셰프의 최근작 <노포의 장사법>

박찬일 셰프의 최근작 <노포의 장사법>

왜 노포(老鋪), 오래된 식당에 주목하시나요?
노포는 그 지역의, 그 지역 사람들의 역사입니다. 거기서 수많은 이들이 사람을 만나고 음식을 먹었어요. 그리고 그걸 기억하고 추억하죠. 그런 역사가 사라지고 있어요. 식당은 힘든 일이라 가업으로 물려주지 않으니까요. 역사가 사라지기 전에 저라도 기록해두고 싶었어요.
책에도 쓰셨듯 노포는 살아있는 전설인데요, 그분들은 왜 일하시나요?
이유는 없어요. 그 일이 주어져서 할 뿐입니다. 산이 거기 있어서 오르듯 그냥 자연스럽게 하게 됐어요.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하기도 하고, 시집을 오면서 시작하기도 하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서 하기도 하고요.
수많은 식당이 문을 열지만, 또 그만큼 문을 닫습니다. 노포가 살아남아 전설이 된 건 무엇 때문인가요?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 전설이 됩니다. 너무 똑똑하고 생각이 많으면 가게는 산으로 가요. 노포의 주인들은 대부분 우직합니다. 다른 생각을 할 줄 모르는 분들이죠.

이번 컨퍼런스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냐는 질문에 박찬일 셰프는 “일의 의미만큼이나 일하지 않는 것의 의미를 묻고, 다른 생각 없이 그저 우직하게 내 길을 가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박 셰프가 연사로 서는 이번 컨퍼런스는 오는 20일 오후 7시 서울 성수동 카페 월닷서울(구 레필로소피)에서 열린다. 티켓은 폴인 사이트에서 구매할 수 있다.

정선언 기자 jung.sun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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