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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규환 간사이 공항 취재기] "오늘 육지 밟을수는 있나"···간사이 공항은 지옥이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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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긴 못 들어가요. 공항에서 나올 수만 있고, 들어가지는 못한다고 들었어요.”

간사이(關西)공항으로 달려가던 중 통화한 오사카(大阪)총영사관 관계자의 말은 실제 현장 상황과는 달랐다.

강풍에 휩쓸린 유조선이 충돌했던 간사이 공항 연결다리의 5일 모습. 간사이 공항과 육지를 잇는 연결다리의 왼쪽이 파손돼 있다. 오른쪽 도로를 이용해 공항에 고립됐던 승객들이 육지로 이동했다. [AP=연합뉴스]

강풍에 휩쓸린 유조선이 충돌했던 간사이 공항 연결다리의 5일 모습. 간사이 공항과 육지를 잇는 연결다리의 왼쪽이 파손돼 있다. 오른쪽 도로를 이용해 공항에 고립됐던 승객들이 육지로 이동했다. [AP=연합뉴스]

공항과 육지를 잇는 연결 다리 부근에 도착한 건 오후 2시30분쯤이었다. 4일 초속 58.1m의 강풍에 휩쓸려 떠내려온 유조선이 들이받은 바로 그 다리다.

태풍에 떠밀린 유조선이 들이받아 연결 다리 끊겨 #영문도 모르는 승객들 "이게 무슨 줄이냐" 아우성 #기자가 간사이 공항 빠져나가는 데만 6시간 걸려 #정전으로 물 안 나오는 화장실, 휴대폰은 불통

공항에 고립됐던 승객들을 구출하는 작업이 5일 새벽부터 시작됐다. 당초 연결다리는 유조선과 충돌한 쪽과 그 반대쪽 모두 불통이었다. 하지만 승객의 탈출을 돕기 위해 반대쪽 3차선 중 1개 차선을 열었다.

공항에서 승객들을 싣고 나오는 버스만 통행이 가능하고, 공항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는 게 총영사관 관계자의 설명이었지만 막상 가보니 진입이 가능했다. 도로를 관리하는 서일본 고속도로 주식회사가 응급차량과 보도 관련 차량, 복구 차량의 공항 진입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다리 길이는 3.7km 가량이었지만 1개 차선만을 열어 교대로 통행하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5일 간사이 공항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승객들의 행렬.[EPA=연합뉴스]

5일 간사이 공항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승객들의 행렬.[EPA=연합뉴스]

10~20대의 차량이 공항에서 빠져나오면 다시 10대~20대가 공항으로 들어가는 시스템이었다.

2시간을 대기하다 4시30분쯤에야 드디어 다리에 올라섰다. 시속 30~40km로 조심스럽게 다리를 통과해 공항에 진입했다.

이날 새벽 6시부터 버스와 고속 페리로 승객들을 탈출시켰다고 했지만, 공항엔 여전히 많은 승객들이 남아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행렬은 끝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당초 고립된 인원은 승객과 직원을 포함해 5000명 정도로 파악됐지만, 사실은 8000명에 달했다. 버스 15대와 고속선 3척으로 탈출시키기엔 너무나 시간이 많이 걸렸다.

줄 잘 서기로, 화를 잘 참기로 유명한 일본인들이었지만 지옥과 같은 공항 내 상황때문에 그들의 인내도 한계점을 넘어서고 있었다.

"열 시간 가깝게 줄을 섰는데 아직 차를 못 타고 있다"는 사람들, 일부는 "화를 낼 힘조차 없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정전과 더위, 쪽잠, 휴대폰 불통으로 인한 정보부족과 벌인 사투때문이었다.

고립된 한국인들의 분노는 머리 끝까지 차 올라 있었다. 기자를 보자 마자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제발 좀 알려달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5일 간사이 공항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승객들의 행렬.[로이터=연합뉴스]

5일 간사이 공항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승객들의 행렬.[로이터=연합뉴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줄이 어떤 줄이냐. 오늘 내로 육지로 나갈 수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일부는 “한국어로 설명해주는 사람도 없고, 제대로 된 안내도 전혀 안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심지어 “중국인들은 먼저 빠져나가더라. 중국 대사관에서 차를 대줘서 먼저 빠져나갔다는 얘기까지 돌고 있다. 우리 대사관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여성도 있었다. 민심은 그만큼 흉흉했다.

정전은 많은 걸 불편하게 만들었다. 공항 화장실에선 변기의 자동 물 내림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 자동 센서 방식으로 작동하는 세면대의 수도꼭지에서도 물이 나오지 않았다.

취재와 기사 전송을 마친 뒤 오후 8시30분쯤 공항을 떠날 준비를 시작했지만 문제는 오히려 그때부터였다.

승객들을 싣고 육지로 나가려는 버스, 버스를 기다리다 못해 자신이 몰고 온 자동차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가려는 일부 승객들의 차량, 긴급 공사 차량 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안그래도 1개 차선 통행으로 정체됐던 연결 다리의 교통 상황은 최악이었다.

공항쪽으로 들어올 때 보다 상황은 심각했다. 1시간에 20m를 겨우 이동할 정도의 최악의 거북이 정체상황이 이어졌다. 탈출 행렬에 동참한 지 6시간 여만인 6일 오전 2시30분에야 다리를 건너 다시 육지를 밟았다. 공항 진입을 위해 다리 앞에서 줄을 선 지 12시간 만이었다.

침수된 간사이 공항의 4일 모습 [AP=연합뉴스]

침수된 간사이 공항의 4일 모습 [AP=연합뉴스]

◇아베 총리 "간사이 국내선 7일 운항 재개"=6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간사이 공항과 "우선 국내선 운항을 내일 중에 재개하고 국제선도 준비가 되는 대로 운항을 재개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열린 비상재해대책본부 회의에서 아베 총리는 "밤을 새워 배수작업 등을 하고 있다.급유시설 파손 등으로 많은 과제가 있지만, 공항 복구를 위해 단계별 내용을 정하고 그 내용을 내일 밝히겠다"고 했다.

오사카=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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