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매케인과 트럼프, 정치와 애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이가영
이가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가영 국제외교안보팀 기자

이가영 국제외교안보팀 기자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의 워싱턴 국립대성당에서 열린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장례식. 전직 대통령 3명과 미국 각계 인사들이 운집한 이곳은 매케인이 바란 그대로 정파를 초월한 화합의 장이었다. 매케인이 의자를 준비하지 않은 한 사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부재’로 존재를 증명했다. 매케인이 트럼프의 참석을 원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패배를 안긴 조지 W 부시·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직접 조사를 부탁한 매케인이다. 그런 그도 인간이었던지 생전 자신에게 “무슨 전쟁 영웅이냐”며 조롱을 퍼붓던 트럼프에게만큼은 마음을 열지 못했나 보다. 매케인의 의중을 반영한 듯 전직 대통령의 조사와 장녀 매건 매케인의 유족 인사말을 관통한 건 고인에 대한 존경과 함께 트럼프를 향한 성토였다.

이 뉴스를 접하며 최근 일본 ‘J팝의 여왕’ 아무로 나미에가 우익들의 공격에 시달린 장면이 오버랩됐다. 오키나와현 출신인 아무로는 지난달 초 사망한 오나가 다케시 오키나와 지사를 추모하는 글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오나가는 생전 미군 비행장의 현 외 이전을 강력히 추진했었다. 그런 오나가를 추모했다는 이유로 아무로에게 일본 우익들은 ‘반일’ ‘정치 음치’라는 원색적 비난을 쏟아냈다.

정치인의 죽음은 그 자체로 정치 무대가 되기도 한다. 주연은 고인, 살아남은 이들은 그를 애도하는 조연으로 고인을 빛낸다. 매케인은 자신이 정성껏 마련한 장례식 테이블에서 트럼프를 배제함으로써 최후의 정치적 메시지를 던졌다. 지지자와 미국민들에게 “절대 트럼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매케인-트럼프 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안타까움이 남는다. 미국 보수의 큰어른인 매케인이 ‘분열의 정치’라 비판했던 트럼프에게 장례식장의 한 귀퉁이를 내줬더라면 그의 화합의 정신이 더욱 빛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향의 정치인을 애도한 것만으로 아무로에게 ‘반일’ 낙인을 찍고 싶어 한 일본 우익들처럼 매케인의 장례식이 트럼프에게 또 다른 분열의 정치로 가는 빌미를 제공한 건 아닐까란 우려가 들었다.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로 선출된 7선의 이해찬 의원은 “정치는 더러운 것”이라는 지론을 갖고 있다. 그런 정치인들이 정적을 치켜세우고 좀처럼 하지 않던 칭찬을 쏟아내는 장이 바로 장례식장이다. ‘빈소 정치’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필생의 숙적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도 죽음 앞에선 화해했다. 그들의 몸짓은 국민들에게 “모두 손을 잡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지난 6월 김종필(JP) 전 총리가 별세했다. 정부는 무궁화장을 추서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조문하지 않았다.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이가영 국제외교안보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