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상속세제 개편 논의 시작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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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신세계 그룹이 "깜짝 놀랄 만한 수준의 세금을 내고 떳떳하게 경영권을 2세에 승계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굴지의 재벌그룹이 경영권 이전과 관련해 세금을 제대로 다 내겠다는 입장을 천명한 것은 일단 반길 일이다. 재벌그룹의 경영권 승계에 대한 의구심을 풀고, 국민의 부정적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세금을 제대로 내겠다'거나 '떳떳한 경영 승계' 같은 당연한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밝혀야 한다는 현실은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문제는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재벌그룹의 경우 현행 세제에서는 정상적 방법으로 경영권을 승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최근 몇몇 대기업의 편법적 경영권 상속이 논란의 도마에 오른 배경에는 바로 과도한 상속.증여세가 자리 잡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은 최고 50%에 이르고, 최대주주의 주식 상속은 할증률이 적용돼 상속재산 가운데 최대 65%를 세금으로 토해내도록 돼 있다. 세금을 제대로 다 내면 창업주 지분의 3분의 1밖에 남지 않는 셈이다. 사실상 경영권 승계가 불가능할뿐더러 경영권에 대한 외부의 위협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 신세계는 그러고도 경영권을 지킬 수 있다지만 그럴 수 있는 재벌기업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런 식의 징벌적인 상속세제에서는 기업들이 이윤을 빼돌리거나 편법적 우회 상속에 나설 유혹이 커지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2세 상속을 포기하고, 전문 경영인에게 맡길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적지 않은 위험이 따른다. 가족경영의 해체 이후 기업 경영이 제대로 된다는 보장이 없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가족경영의 장점을 살린 성공사례로 꼽힌다. 또 기업을 2세에 물려줄 길이 차단된다면 장기적으로 기업을 키워나갈 유인이 감소하고, 결국은 경제 전체의 활력이 떨어질 우려가 크다.

반면 상속.증여세는 사회정의 수준과 맞물려 있다. 기업과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으면서 우리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