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식의 야구노트] 대표팀이 오지환에게 지배 당하지 않으려면?

중앙일보

입력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은 오지환(28·LG)과 박해민(28·삼성)이 지배했다. 금메달을 따고 지난 3일 귀국했어도 그들은 축하를 받지 못했다. 대표팀 선발 과정에서 불거진 공정성 논란이 불씨가 되어 분노의 들불로 번진 것이다. 기량이 부족한 선수들의 무임승차에 대한,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감독의 성과주의에 대한 야구 팬들의 강한 경고였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결승 한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승리한 뒤 LG 트윈스 출신 선수, 코치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현수, 오지환, 유지현 코치, 임찬규. 자카르타=연합뉴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결승 한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승리한 뒤 LG 트윈스 출신 선수, 코치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현수, 오지환, 유지현 코치, 임찬규. 자카르타=연합뉴스

야구 대표팀은 이렇게 비난만 받고 끝날 것인가. 미필자 9명이 병역특례를 받은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불행하게도 이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줄 것 같지 않다. 몇몇은 군입대를 '피하게' 됐지만 선수 생활을 하는 내내 욕을 먹을 것이다.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제2의 오지환’이 또 나올 수 있다.

기찬수 병무청장은 “체육·예술 분야 병역특례를 전체적으로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 개선안도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다른 국제대회 성적도 고려해) 마일리지를 제도를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야구 대표팀을 관장하는 KBO도 시스템을 바뀌어야 한다. 논란의 출발점인 만큼 정부안을 기다리기만 할 게 아니라 주체적으로 대안을 만들 필요가 있다.

선동열 야구대표팀 감독이 선수 선발에 대한 전권을 가진 현 시스템으로는 ‘인맥 논란’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기술위원회 등을 통해 선수 선발의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아시안게임 기간 KBO리그를 진행하는 것이다. 그것이 KBO리그의 품질을 스스로 유지하는 방법이며, 팀당 144경기나 치르는 일정을 방해하지 않는 길이다. 아시안게임에 나가려면 순위싸움이 한창일 때 20일 가량 소속팀을 떠나야 한다. 이것이 병역 마일리지 제도 등과 결합한다면 한 대회 결과로 병역면제가 되는 특혜는 없어진다. 아시안게임, 올림픽, 프리미어12,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등에서 차곡차곡 마일리지를 쌓은 선수에게 병역혜택이 돌아간다면 국가를 위해 뛴 선수를 가려낼 수 있다.

아시안게임 대표팀의 ‘체급’도 재논의할 필요가 있다. 아시안게임은 종목마다 다른 출전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축구는 23세 이하 선수에 와일드카드(24세 이상 선수) 3장을 쓸 수 있다. 농구·배구는 어느 국가나 올스타급 대표팀을 보낸다. 미국프로농구(NBA) 조던 클락슨(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은 필리핀 대표 선수로 뛰었다.

정운찬 총재,선동열 감독.

정운찬 총재,선동열 감독.

야구는 정규시즌이 아시안게임 기간과 겹치는 점이 다른 종목과 다르다. 프로리그가 활성화된 일본과 대만은 굳이 프로선수들을 아시안게임에 보내지 않는다. 한국만 올스타급 선수들이 아시안게임에 나서는 건 징병제 국가이기 때문이다. 리그를 중단하고, 고액 연봉을 받는 양현종(KIA)과 박병호(넥센) 등 특급선수들이 아마추어 선수들을 상대하는 건 그래서 일어난 일이다.

야구 팬들은 프로선수의 아시안게임 참가를 무작정 반대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규정에도 없는 23세 이하 선수단을 꾸리자고 요구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건 오히려 역차별일 수 있다.

병역특례 제도는 45년이 지나도록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동안 한국은 탈아시아적 경제 대국, 스포츠 강국이 됐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곧 국위선양이라는 틀은 한참 낡았다. 이제 팬들이 아시안게임 금메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투명한 과정과 공정한 경쟁이다. 야구 대표팀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과도하고 거칠지언정 귀담아 들어야 한다. 사회가 공정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스포츠가 먼저 바뀌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외침이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