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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괴물 오타니, 겸손한 오타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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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괴물 오타니가 메이저리그에서 연일 맹활약하고 있다. 13일(미국시간) ‘어머니의 날’ 을 맞아 분홍색 모자를 쓰고 등판한 오타니. [USA투데이=연합뉴스]

괴물 오타니가 메이저리그에서 연일 맹활약하고 있다. 13일(미국시간) ‘어머니의 날’ 을 맞아 분홍색 모자를 쓰고 등판한 오타니. [USA투데이=연합뉴스]

1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의 에인절 스타디움.

메이저리그에서 투타 겸업 안착 #큰 체격, 빠른 공에 강한 타구까지 #14일 미네소타전 6.1이닝 11K 쾌투

일본인 메이저리거 오타니 쇼헤이(24·LA 에인절스)가 마운드에 올랐다. 어머니의 날 드레스 코드에 맞춰 분홍 모자를 눌러쓴 그는 미소년 같았다. 그러나 오타니는 불을 뿜는 듯한 강속구를 잇달아 던졌다. 미네소타 트윈스를 상대로 6과3분의1이닝 동안 삼진 11개를 뽑아내며 3피안타 1실점으로 잘 막았다. 에인절 스타디움을 찾은 관중들은 그의 파워피칭을 보며 탄성을 질렀다.

오타니는 이날 최고 시속 159㎞의 강속구와 스플리터·커브·슬라이더를 자유자재로 섞었다. 1m93㎝의 큰 키는 마운드 위에서 더욱 커 보였다. 에인절스 불펜이 승리를 지켜주지 못했지만 오타니는 2-1 승리의 일등 공신이었다. 투수(3승1패, 평균자책점 3.58)로도, 타자(타율 0.348, 홈런 5개)로도 그는 2018 메이저리그의 최고 히트상품이다. 현대 야구에서는 오타니와 비교할 선수가 없어 한 세기 전 스타인 베이브 루스(1918년, 13승-11홈런)와 함께 재조명되고 있다.

이날 에인절 스타디움을 찾은 취재진 40여 명 가운데 30여 명은 일본인이었다. 일본 스포츠 전문지 풀카운트의 본코바라 고지 기자는 “지금까지 일본에 수많은 야구 스타가 있었지만 현재 최고 인기 선수는 단연 오타니다. 투수와 타자를 겸업하며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다는 건 정말 만화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오타니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초(超) 아시아적 스타이기 때문이다. 그는 메이저리그 거인들보다 더 큰데도 균형 잡힌 체격을 갖췄다. 메이저리그 선발 중 가장 빠른 공(최고 시속 163㎞)을 던지는 데다, 타구 평균 속도는 메이저리그 타자 중 12위(시속 153㎞)다. 그의 홈런 타구는 시속 180㎞까지 측정됐다. 힘과 속도의 경연장인 메이저리그에서도 오타니는 특히 세고, 유난히 빠르다. 아시아에서 나온 적이 없는 유형의 선수다.

경기 뒤 인터뷰 도중 미소짓는 오타니. [김식 기자]

경기 뒤 인터뷰 도중 미소짓는 오타니. [김식 기자]

얼마 전 유니폼을 벗은 스즈키 이치로(45)와 1990년대 박찬호와 함께 활약했던 노모 히데오(50)는 빅리그에서 가장 성공한 일본 선수로 꼽힌다. 이치로는 기술적인 타격으로, 노모는 낙차 큰 포크볼을 자랑했다. 메이저리그에서 경쟁력을 보여준 일본 선수는 테크니션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본코바라 기자는 “오타니는 여느 메이저리그보다 더 뛰어난 체격을 갖췄다. 그래서 그들을 뛰어넘을 거라고 스스로 자신할 것이다. 기술적으로 발전하는 단계만 남았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미국인들은 오타니의 아시아적인 면모를 좋아한다. MLB.com의 에이브리 양 기자는 “인터뷰를 할 때 오타니는 마이크 소시아 감독의 의자를 먼저 뒤로 빼준다. 감독을 매우 존중하는 태도는 미국에서 보기 힘든 장면”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오타니의 첫 홈런 사진을 구단 직원이 구장에 걸어놓으려 했다. 그러나 오타니가 극구 말렸다. 그는 팀을 먼저 생각하는 선수다. 내가 아는 모든 에인절스 구성원이 오타니를 아주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천부적인 체격과 재능을 가진 오타니를 더욱 빛나게 하는 건 그의 태도다. 오타니는 학창 시절부터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 ‘만다라트 계획표’를 짰다. 훈련법과 체력 관리법·멘탈 강화법·동료들에게 사랑 받는 방법까지 세세하게 적어놨다. 그리고 한눈팔지 않고 이것들을 실행하고 있다. 본코바라 기자는 “오타니가 하는 모든 행동은 야구를 위한 일”이라고 했다.

오타니는 지난 3월 시범경기에서 부진했다. 미국 언론은 “오타니는 마이너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해야 한다. 타격은 고교생 수준”이라고 혹평했다. 그러나 스물네 살 앳된 청년은 위축되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하나 하나 배우는 과정”이라며 여러가지 실험을 했다. 투수로서 스플리터 구사율을 높였고, 타자로서 레그킥을 포기하고 콤팩트한 폼으로 바꿨다. 그리고 정규시즌이 시작되자마자 메이저리그를 뒤흔드는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오타니는 “자만하지 않겠다. 언젠가 슬럼프가 찾아올 수 있기 때문에 그걸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도 일부 전문가들은 오타니의 투타 겸업을 우려한다. 쓰는 근육과 훈련법이 다르기 때문에 기량을 유지하기 어렵고, 부상 우려도 크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오타니를 밀착 취재하는 기자들은 그의 성공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선발투수로 일주일에 한 번만 던지기 때문에 다른 일본인 투수들과 달리 어깨를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여러 변수가 있겠지만 오타니라면 해결책을 찾을 것이라고 그들은 믿고 있었다. 경기 후 오타니는 “(일본 타자들과 달리) 메이저리그 타자는 1번부터 9번까지 모두 파워를 갖췄다. 네 가지 구종(속구·스플리터·커브·슬라이더)을 균형적으로 던지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애너하임=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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