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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에다의 미디어 공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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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알카에다 지도부가 계속 메시지를 내는 것은 이라크에 통합 정부가 구성되는 쪽으로 정치적 진전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이라크의 정치적 안정은 재앙이다. 이라크에서 저항을 주도하는 수니파가 무장을 해제하고 통합 정부에 참여하면 알카에다의 기반이 사라진다. 알카에다는 수니파가 등을 돌리면 정치적.군사적으로 생존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미국은 알자와히리가 지난해 10월 알자르카위에게 보낸 편지를 입수했다. 이에 따르면 알자와히리는 알자르카위에게 무차별적 인명 살상 행각은 이라크 내 수니파를 고립시키는 짓이라고 꾸짖었다. 그는 수니파의 지지가 없으면 "지하드 운동은 그림자 속으로 사라질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이슬람 웹사이트에 게재된 16분짜리 비디오에선 이라크에서 수백 건의 자살폭탄 테러를 벌여 미군을 살해했다고 자랑했다.

얼마 전에는 알자르카위가 처음으로 비디오에 등장했다. 그는 이라크 정부가 미군의 '꼭두각시'이며 무슬림 세계의 심장에 꽂힌 '독검'이라고 주장했다. 또 부시 미국 대통령을 향해 "이슬람의 땅에서 평화를 얻지 못할 것이며, 앞으로는 더 험난한 일을 당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그러면서 외국 주둔군에 협력하는 이라크 경찰과 군대를 공격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에 앞서 빈라덴의 육성도 공개됐다.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공개된 테이프에서 그는 "이라크에서의 패배는 모든 전쟁에서의 패배를 의미한다"며 성전을 촉구했다.

알카에다 지도부는 이라크 전쟁을 9.11 테러 이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인식해 왔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상황은 빈라덴에 유리하지 않았다. 무슬림 사회조차 그를 지지하지 않았다. 알카에다는 군사적 어려움을 겪었고, 200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정권이 무너져 정치적 기반을 잃었다. 한마디로 혼수상태였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은 알카에다를 부활시키고 새로운 동기를 부여했다. 미군의 아랍 국가 점령으로 알카에다는 무슬림 세계를 설득할 수 있었다.

이라크에서 시아.수니.쿠르드 지도자들이 통합 내각 구성에 진전을 보일 기미가 있자 빈라덴과 측근들은 경계하기 시작했다. 이라크가 안정되면 알카에다는 쇠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 수니파 지도자가 자신들과 알카에다를 분리해 이야기하는 등 이미 수니파가 돌아서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물론 이라크에는 여전히 사회.정치.군사적 격변이 진행 중이다. 정파 간 분열은 깊어지고, 사망자는 계속 늘고 있다.

알카에다의 미디어 공습은 이런 정치적 변화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알자르카위는 비디오에서 수니파를 향해 "미국과 시아파 때문에 수니파 사회가 위험에 빠졌다"고 주장했다. 빈라덴과 알자와히리도 마찬가지다. 알자와히리는 또 이라크.파키스탄.이집트.사우디아라비아.요르단의 지도자들을 배신자라고 비난하고 무슬림들이 봉기해 이들에게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급해진 알카에다는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다시 환기시키고, 지지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싸우도록 격려한다. 빈라덴과 측근들이 미국과 그 동맹들에 맞서 여러 곳에서 '전쟁'을 수행하고 있지만 그중 이라크는 가장 중요한 무대다. 알카에다는 아프가니스탄을 잃은 뒤 간신히 살아남았다. 이라크를 잃는 것은 그들에게 치명적일 것이다.

파와즈 게르게스 미국 뉴욕주 세라 로런스대 크리스천 존슨 석좌교수

정리=박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