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영 칼럼] 30년 전의 9·11 사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내 조국은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그 어느 나라보다 많은 배신을 당했다. 그리고 거기 맞서 초석 사막에서, 해저 탄광에서, 우리 민중의 손으로…캐내는 구리가 묻힌 저 거친 언덕에서 거대한 자유의 물결이 솟구쳤다. 그것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개혁과 정의를 펼치기 위해, 그리고 우리의 자원을 외국인들의 손아귀에서 다시 찾아오기 위해 아옌데라는 이름의 사나이를 일으켜 세웠다."

*** 선거 통한 남미 최초 좌파정권

노벨상 수상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글은 이렇게 계속된다: "칠레는 혁명이 별로 없었으며, 안정적이고 보수적이며 지극히 평범한 정부들을 가졌던 오랜 역사의 나라다. 작은 대통령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위대한 대통령은 두 명뿐이었다."

그 하나가 1973년 9월 11일 쿠데타로 사망한 살바도르 아옌데였다. 지난 추석 문득 그의 30주기가 떠올랐다. 쿠데타에 뒤따른 피와 살육의 제전 얘기를 요행히 몸을 피한 칠레 학생들에게서 들으면서, 서슬 푸른 긴급조치 아래 데모하면 사형이었던 당시 내 조국의 독재와 탄압에 서린 서러운 기억 때문일지 모르겠다.

아옌데는 6년 임기의 대통령선거에서 거푸 세 번이나 떨어졌다. 3전4기로 70년 당선은 되었으나 독자적인 승리가 아니었다. 그는 공산당.사회당.급진당.사민당 등 6개 정파로 이뤄진 인민연합(Unidad Popular)의 '공조 후보'였으며, 그런데도 2위 국민당 후보와의 득표율 차이는 1% 남짓했다.

의회의 결선 투표에서는 3위의 보수 우익 기민당한테 기존의 권력 기구와 제도는 일절 손대지 않겠다는 수치스러운 '보장 각서'를 써주고 지지를 얻었다. 명색은 좌파 정권이었으나 내용은 각양각색 무늬의 수렴청정이었다.

선거(ballot)를 통한 남미 최초의 좌파 정권은 이렇게 출현했다. 그러나 미국의 심기는 아주 불편했다. 쿠바에는 폭력(bullet)으로 정권을 잡았다는 반민주 규탄이 가능했으나,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한 사회주의로의 이행이라면 시비할 명분이 마땅찮았다.

미국의 텃밭에 들어선 쿠바와 칠레의 좌파 정부를 두고 키신저 안보보좌관은 "서반구에서 두개의 공산주의와 공존은 곤란하다"라고 회고록에 적었다. 그것은 기분 문제가 아니라 이해의 문제였다.

인민연합의 슬로건대로 "구리는 칠레의 봉급"이고 '외화벌이' 밑천이었다. 그러나 칠레 구리의 주인은 미국 자본이었다. 일례로 미국의 아나콘다 구리 회사는 69년 전 세계에 행한 투자의 17%를 칠레로 돌렸을 뿐인데, 전 세계에서 얻은 이윤의 79%를 칠레에서 챙겼다.

아옌데가 동광(銅鑛) 국유화를 외쳤을 때 그의 제거는 예고된 운명이었다. 미국의 계산에서 선거는 졌지만 경제와 군대가 남아 있었다. 닉슨 대통령과의 대책 회의에서 중앙정보국(CIA) 헬름스 국장은 "칠레 경제에 비명을"이라는 메모를 남겼다.

재고를 풀어 국제 구리 가격을 폭락시키고, 미국과 해외의 칠레 차관을 봉쇄했으나 군사 원조만은 증액했다. 중산층 주부들에게 빈 냄비를 들려 '냄비 데모'에 나서게 하고, 반정부 노조 투사들을 해외에서 훈련시켜 파업을 벌이도록 했다.

남북으로 4천2백70㎞나 뻗은 칠레에서 트럭 운송은 생필품 보급의 결정적 수단인데 미국 공작원들은 트럭 소유주와 상점 주인들을 끌어들여 '사장들의 파업'을 부추겼다. 야당과 언론 매수를 비롯한 중앙정보국의 반정부 공작금이 70~73년에만 8백만달러였다.

*** '냄비 데모'나선 중산층 주부들

비행기 폭격에 이어 탱크가 관저로 돌진하는 가운데 아옌데는 "내가 인민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라고 고별 방송을 했다. 그 약속대로 망명 제안을 거절한 채 최후까지 싸우다가 카스트로가 선물한 총으로 65년의 생애를 마감했다.

아옌데의 실패는 한 교수의 논평대로 "부자와 빈민이 서로의 에고이즘을 정부에 강요한 데 있었다." 게다가 개혁의 물질적 준비조차 없이 개혁을 서두른 정부의 에고이즘이 또 있었다.

저우언라이(周恩來)는 "서두르면 안 됩니다. 모든 일을 한꺼번에 풀려고 하지 마십시오"라는 편지를 보냈고, 카스트로 역시 "마르크스라는 만병통치약의 쉬운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당부했다. 개혁은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며, 개혁을 위한 만병통치약은 없다.

정운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