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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사고분쟁 환자에 일방적으로 “불리”-의협의 「특례법」안에 소비자단체 등 반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각종 의료사고에 따른 의료진과 환자 측의 분쟁을 신속하고 공정하게 처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아쉽다.
그러나 정부당국은 의료분쟁이 날로 증가하고 있는데도 적극적으로 대처하기는커녕 해결책을 의사들의 이익단체인 대한의학협회에 전적으로 떠맡기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어 환자들의 반발이 크다.
특히 최근 대한의학협회가 대한변호사협회와 공동으로 개최한 세미나에서 의료사고를 당한 환자에 대한 보상책을 제대로 제시하지 않은채 의사의 업무상 과실만을 사실상 배제한 가칭 「의료사고처리특례법안」을 선보이자 일부 법조계 인사들과 소비자단체·환자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의료사고는 의학과 인간의 한계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마련이다.
의료관계자들은 국내에서 의료분쟁이 본격화 된 것은 시민의식이 눈뜨기 시작한 지난 60년대부터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전에도 의료사고는 끊임없이 있었으나 의사의 희소가치와 권위를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뚜렷한 분쟁이 드물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최근들어 의료사고로 피해를 본 일부 환자 측이 보상이 제대로 안되자 병원 점거농성·기물파손 등 소란이 빈발, 일부 의료진이 응급환자와 중환자를 기피하는 등 부작용을 빚고있다.
의협공제회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의료행위 중7∼8%에서 의료분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전국의료기관의 66%가 분쟁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개원의사 중 53.1%가 의료분쟁의 발생 가능성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국내 의료사고 피해자들은 의협공제회 또는 해당 의료기관에서 보상받고 있다.
사고를 일으킨 의료기관이 공제회 회원인 경우에는 공제회의 오류판정에 따라 보상금을 지급 받고 있는데 사망자 중 1천만원 이상을 받는 사례는 약 3분의1 에 불과하며 생존자의 상당수는 고작 10만∼2백만원 정도의 보상금만 지급 받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에서 피해자가 수십만∼수백만 달러를 받는데 비하면 국내 피해자들은 귀중한 목숨을 잃거나 불구가 되고서도 형편없는 보상을 받고 있는 셈이다.
의협공제회와는 별도로 서울대병원 등 몇몇 대학병원은 의료분쟁의 해결을 전담하는 기구를 설치, 운영하고 있으나 의료분쟁에 그다지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의협은 최근 수년전부터 숙원사업으로 추진해온 「의료사고처리특례법안」을 마련, 정부당국에 제출했다.
의협은 ▲의사도 인간이기 때문에 오류를 범할 수 있으며 ▲의학의 한계로 의료사고를 어쩔 수 없이 겪는 경우가 있다고 전제, 의료사고를 교통사고와 유사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등 9개 조항의 주장을 이 법안에 담고 있다.
이 법안의 핵심조항인 제3조(처벌의 특례)는 ▲무면허 의료행위 ▲태아의 성감별 행위를 제외하고는 의사의 업무상 과실에 따른 처벌을 사실상 배제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모 의과대학교수는 『이 법안은 제1조에 「의료사고로 인한 피해의 신속한 회복을 촉진하고 국민생활의 편익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피해자에 대한 보상문제를 도외시하고 있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 법안이 단기적으로는 의권을 보호해줄 수 있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되레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의사의 「명백한 오류」를 판정하는 주체가 의사들의 이익단체인 의협 산하의 공제회로 객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힘들고 피해자에 대한 보상도 적절치 못하기 때문에 호소 할 길이 막히면 피해자들이 극단행동을 서슴지 않게 될 우려가 오히려 더 크다는 것이다.
환자 가족들이 의료기관에서 소란을 피우는 원인 중의 하나가 오류판단이 제3자에 의해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았던 사례도 없지 않았다는데 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또 교통사고는 사고원인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지만 전문성이 높은 의료사고의 경우 의사가 과오를 솔직히 인정치 않는 한 원인규명이 쉽지 않기 때문에 의료사고를 교통사고와 똑같이 특례적으로 처리하는데는 많은 무리가 뒤따른다고 지적했다.
일부 의료 관계자들은 의료사고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서는 우선 법조계·소비자단체·의료계 등의 인사들로 「명백한 과오」를 엄정하게 심의할 수 있는 기구나 제도를 확립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공제회에 의한 보상제도를 손해보험형태로 바꾸고 현재의 「주먹구구식 보상기준」을 제대로 확립하는 방안도 고려해봐야 할 것으로 지적했다.
또 의사들이 「명백한 과오」가 인정될 때까지는 환자 가족들의 행패나 형사적 소추 등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제도적인 안전판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의료사고 해결책은 정부당국의 관심과 개입으로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김영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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