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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리고 욕하는데도 전체 이용가? 웹툰 등급 잘게 나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연재 초기부터 꾸준히 네이버 금요웹툰 조회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외모지상주의’(왼쪽)와 지난 5월 네이버에 연재를 시작한 ‘약한 영웅’. 두 웹툰 모두 전체 이용가 등급이다. [이미지 네이버웹툰]

연재 초기부터 꾸준히 네이버 금요웹툰 조회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외모지상주의’(왼쪽)와 지난 5월 네이버에 연재를 시작한 ‘약한 영웅’. 두 웹툰 모두 전체 이용가 등급이다. [이미지 네이버웹툰]

‘외모지상주의’는 네이버 금요웹툰 조회 수 1위를 지키고 있는 인기 만화다. 특히 10대들에게 인기가 많다. 고교생인 주인공이 두 개의 몸을 갖게 되는 설정을 통해 소심했던 모습을 극복하고, 자신을 괴롭히던 일진들을 물리치는 스토리가 꽤 흥미진진하다. 그런데 논란도 잦다. ‘전체 이용가’인데 자극적인 폭력 묘사와 대사, 선정적인 그림체가 꾸준히 등장하기 때문이다. 댓글에는 ‘우리 아이가 폭력에 대한 환상을 가질까 두렵다’는 우려가 잇따른다.

12·15세 등급 연내 도입 급물살 #현재 전체·19세 두 단계에 그쳐 #“표현의 자유 제한 없도록 추진”

올해 5월 시작한 웹툰 ‘약한 영웅’은 첫 장면부터 일진으로 보이는 학생이 “X발 X나 병XX끼가 몇 대 처 맞더니 말도 못하고 존댓말 하더라니까?”라며 욕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이후 격투기 고수인 학생이 이 일진을 무자비한 폭력으로 제압하고, 주위 학생들은 이를 우러러보는 전개가 펼쳐진다. 토요웹툰 조회 수 상위권을 오랫동안 차지해온 ‘프리드로우’는 “일진에도 분명 선한 일진이 있고 악한 일진이 있다”“싸움은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라는 식의 대사를 통해 일진을 미화하기도 한다. 이 웹툰은 모두 ‘전체 이용가’다.

이런 웹툰 이용 연령을 세분화해 ‘12세 이상’과 ‘15세 이상’ 등급을 새로 도입하는 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현재는 ‘전체’와 ‘19세 이상’ 등급밖에 없다. 전체 이용가는 로그인 없이 누구나 볼 수 있고, 19세 이상 이용가는 성인 인증을 거쳐야 한다.

한국만화가협회(만협)가 최근 작성한 ‘웹툰 자율규제 연령등급 기준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향후 웹툰의 이용 등급은 4개로 제시될 예정이다. 만협은 2012년부터 웹툰의 자율 심의를 담당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만화계를 대표할 수 있는 만협과 ‘웹툰 자율 규제’ 협약을 맺은 결과다. 만협의 연구는 연령등급을 ▶전체 이용가 ▶12세 이상 이용가 ▶15세 이상 이용가 ▶18세 이상 이용가로 나눴다. 다만 12세·15세 등급은 인증 형식이 아니라 TV프로그램의 연령 고지와 같이 가이드라인 형식이 될 예정이다. 18세 이상 등급은 지금처럼 성인 인증을 거친다.

그간 꾸준히 지적돼온 문제는 또 있다. 등급을 나누는 명시적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작가와 플랫폼 사업자가 자의적으로 등급을 매기고, 더 많은 이용자 확보를 위해 주로 ‘전체 이용가’로 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 때문에 같은 등급인데도 표현수위에 차이가 컸고, 전체 이용가 웹툰에 대한 선정성·폭력성 등 논란이 지속됐다. 이와 관련해 2016년 “전체 이용가 웹툰을 사전 심의하라”는 서명 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졌고, 한 학부모는 “폭력적 웹툰을 무분별하게 서비스하고 있다”며 네이버와 웹툰 작가 등을 형사 고소하기도 했다.

만협의 연구는 명시적인 등급 기준도 내놨다. ▶폭력성 ▶주제의 유해성 ▶선정성 ▶사행성 ▶모방 위험 ▶약물 ▶언어 ▶차별 등 8개 기준이다. 예를 들어 폭력성의 경우 “성폭력이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표현된 것” “신체 부위, 도구 등을 이용한 물리적 폭력과 학대·살상 등이 지속적이거나 구체적이지 않은 것” 등의 항목으로 기준을 구성했다. 이를 바탕으로 작가가 등급을 매기는 방식이다.

책임연구원을 맡은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는 “영화처럼 특정 위원회가 등급을 매기기에는 웹툰의 물량이나 유통 체계 상 적절치 않은 게 사실”이라며 “인증제를 할 경우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할 수 있고, 디지털콘텐트의 경우 강제적으로 금지할수록 문제가 된다는 연구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전체 이용가 웹툰 사전 심의’ 서명운동을 이끌었던 학부모 김영열씨는 “자체적으로 노력을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웹툰은 영화·방송처럼 시청 지도가 쉽지 않다”며 “12세, 15세 연령 등급도 인증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웹툰은 그 자체로 생태계를 만들어내며 디지털 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왔다. 그럼에도 영화·방송·게임 등과 비교해 체계적 심의 시스템이 없어 수시로 논란이 됐다. 박인하 교수는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다”라면서도 “플랫폼 사업자와 협의를 거쳐 이르면 올해 안에 적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 “자율 규제의 안정적 체계를 구축해 문화콘텐트 갈등을 해결하는 모범 사례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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