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이후 수천만 명 통화기록 미 국가안보국 몰래 수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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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2001년 9.11 테러 직후부터 미국민 수천만 명의 통화 기록 수억 건을 비밀리에 수집해 왔다는 주장이 제기돼 정치문제가 되고 있다.

USA투데이는 11일 NSA가 AT&T.버라이즌.벨사우스 등 대형 통신회사로부터 통화 기록을 입수해 분석해 왔다고 보도했다. 익명의 소식통은 NSA가 통화 내용을 도청하거나 녹음하지는 않았으나, 통화에 이용된 전화번호는 물론 특정인 상호 간 발신.수신 여부, 통화 날짜.시간 등 정보를 수집해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NSA는 이를 바탕으로 최신 사회조사 기법인 '사회 연결망 분석'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공통점이 없는 조직에 속하는데도 서로 연결되는 사람들을 찾아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은밀한 인간관계를 파악하는 기법으로, 기업과 정보기관들이 활용해 왔다. 미 정보기관이 9.11 테러범들의 조직망을 파악하기 위해 2002년에 이 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통화 기록 말고도 미국민의 휴대전화, e-메일, 인스턴트 메신저 등의 기록도 수집했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NSA가 통화 기록을 수집한 것으로 의심받는 시기는 최근 중앙정보국(CIA) 국장에 지명된 마이클 헤이든 공군대장이 NSA 국장으로 재직하던 시절(1999~2005년)과 일치한다.

이에 따라 헤이든에 대한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논란이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사건이 불거지자 부시 대통령은 "미국민의 프라이버시는 철저히 보호되고 있다"며 "선량한 미국민의 사생활을 뒤지거나 들여다보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NSA의 통화 기록 수집 의혹의 사실 여부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의원들까지 정부에 진실을 밝히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민주당 하원의원 52명은 특별검사 임명을 부시 대통령에게 촉구했다. 부시 대통령의 영장 없는 비밀도청 승인을 강하게 비판해온 앨런 스펙터(공화) 상원 법사위원장은 "관련 업체에 자료 제출을 요구해야 한다"며 통신회사들에 법사위 출석을 요구할 것임을 시사했다. 찰스 슈머 민주당 상원의원은 "헤이든 대장의 CIA 국장 지명 문제를 의회가 재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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