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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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소설은 이야기다」라고 흔히 말하는 것은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재미와 조건들을 전제로 한다. 소설이 이야기이면서 역사와 다른 것은 사적인 자아의 갈등과 행동과 고민이 개인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데 있다. 그러면서도 소설이 역사에 어떤 암시를 할 수 있고 때로는 역사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개인의 삶을 통했을 때 역사적 사건의 실마리가 보다 쉽게 풀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한승원의 전작소설 『우리들의 돌탑』은 소설이 가지고 있는 현실과의 그러한 관계를 실명하는데 주목할만한 작품이다.
80년 5월에 있었던 비극적인 사건의 주인공을 추적하고 있는 이 작품은 바로 그 인물이 속해 있는 가족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형식을 띠고 있다.
그것은 오늘의 세대가 회상을 할 수 있는 해방전후의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비극의 역사가 어느 정도 변형되는지 보여준다. 제1세대가 친일파의 지주로 나타난 반면에 제2세대는 경찰관과 부역자로 나뉘어서 서로 죽고 죽이면서 근친상간 등 여러 가지 비극적인 사건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리하여 이들 사이의 관계로 태어난 제3세대가 80년의 비극의주인공이 된다.
이들은 제2세대가 경찰과 부역자로 나뉜 것과 마찬가지로 항쟁의 편에 가담한 쪽과 이를 고발하고자 하는 쪽으로 나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작가는 80년의 비극이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 뿌리와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을 공적 기록인 역사의 입장에서 보면 이데올로기의 대립이라 할 수 있지만 작가는 그들 개인이 소속되어 있는 가족의 비극으로 다룸으로써 개개의 인물들이 살아서 움직이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삶은 도식화될 수 없는 복합성을 띠고 비극으로서의 풍요성을 갖게된다.
작가 자신이 소설을 「빛속의 어둠이고 어둠속의 빛」이며 「도덕 속의 부도덕이고 부도덕 속의 도덕」이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이 작품은 「죄악의 역사」에서 이분법적 분류의 세계가 아니라 여러가지 신화적 주체들이 고리를 형성하고 있는 통합적 세계를 제시하고 있다.
탄생신화와 그 원형구조, 근친상간과 그 보상, 날개와 실패한 승천, 살인과 속죄의 탑 쌓기 등은 이 작품이 최근에 볼 수 없는 소설적 깊이를 획득하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돌탑을 쌓으면서 자기앞에 놓인 죽음의 그림자를 지워가는 주인공의 삶은 무수한 죽음의 체험을 갖고 있는 우리에게 감동 없이 읽을 수 없게 만든다. <김치수><이대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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