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기감 팽배…신 주류·보수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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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정당이 침몰과 회생의 기로에 서있다.
6공 출범이후 9개월 동안 「전두환 족쇄」에 묶여 허우적거리던 민정당이 전씨의 유배로 5공 세력이 완전 몰락하자 당 재건의 몸부림을 시작했다.
노태우 대통령이 당 쇄신을 약속하고 당 개혁 위가 나서 당내 경선의 확대, 당 정강정책의 수정에서부터 심지어 「민정당」이란 당명까지 개명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민정당이란 이름에는 전씨의 이미지가 너무 오버랩 되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그러나 민정당의 쇄신이 이와 같은 외피를 고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위기감이 당내 외에 팽배해 있다.
집권당 안에서 당 해체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도는가 하면 당의 해체, 또는 분당·탈당 설 까지도 나오는 판이다.
지난 25일 의원총회에서 △당내 보수파의 실세로 꼽히는 정호용 의원이 노 대통령을 아예 비판하고 나선 것 △일부 전씨 파 의원들의 노골적인 당비판 △5공 세력에 대한 숙청소문 등은 모두 당내의 이 같은 어지러운 갈등을 말해주고 있는 것들이다.
이와 같은 당내 분열의 가장 큰 원인은 △당내에 서서히 파벌이 형성되기 시작하고 △그에 따른 세력다툼이 벌어 지고있는 증좌이며 △이 세력들간에 시국을 보는 시각과 당 쇄신 처방이 전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주변의 이른바 6공 신 주류들은 정국에 대해 낙관적이다.
청와대의 최병렬 정무수석비서관·박철언 정책보좌관, 민정당의 김윤환 총무가 노 대통령 외 핵심측근이고 박준병 사무총장 등이 직계세력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TK(대구·경북)세력일부와 6공 신참 파들의 지지를 받고있다.
이들 신 주류는 그 동안 전씨 문제로 약간 노정부가 뒤뚱거려 왔지만 이제부터는 반전이 가능하다고 보고있다.
이들은 노 대통령의 개인적 인기는 계속 상승되고 있으므로 확고한 민주화 의지를 바탕으로 전씨 문제해결 6개항을 실천해 가면 국민적 지지를 회복 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민정당 은 △부 총재경선 등 당내민주화조치를 확대함과 아울러 △5공 인맥을 숙청, 단절하고 △새로운 신인들을 과감히 발탁함으로써 「노태우 당」으로 환골탈태한다면 재기가 가능하다고 보고있다.
그러나 정호용 의원을 중심한 군 출신 주축의 보수세력, 전씨 파, 그리고 이종찬 의원의 중도온건세력들은 심각성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민정당이 벼랑 끝에 서있다는데는 견해가 일치한다.
이들은 여소 야대가 현재 난국의 결정적 요인이긴 하지만 그 동안 노 정부의 무기력이 난국을 더욱 악화시켰다고 진단한다.
이들은 우선 현 정부의 리더십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본다.
첫째, 노 대통령의 인사정책이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장임명 동의 안 부결파동은 말할 것도 없고 국회사무총장을 반년이 넘도록 임명하지 못하고 있으며 얼마 전 한일친선협회(회장 이재형) 회장을 교체하려다 실패한 일등 인사상 미스가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집권정부가 그 동안 으레 향유해왔던 공무원의 충성도가 현저히 떨어졌으며 언론으로부터의 지원이 크게 악화됐다고 본다.
셋째, 공권력 부재의 현상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 이젠 노사분규뿐 아니고 농어민까지 목소리를 높이고 나서 혼란상태가 확산되고 있는데도 공권력의 대처는 무력하다는 것이 이들의 우려다.
이와 함께 민정당 조직의 붕괴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이들은 보고있다.
민정당 지방조직의 골간이었던 지역협의회는 거의 무너졌고 지방에 따라서는 부위원장을 구하지 못해 쩔쩔 매는 곳도 있다고 한다.
이들의 주장은 민정당이 침몰 중에 있으며 지금과 같은 상태가 1, 2년 계속되면 민정당은 존립자체가 문제될 것이라고까지 비관적인 전망을 하고있다.
이런 우울한 진단이 지배적이지만 이에 대한 처방은 조금씩 다르다.
전씨 은둔이후 철저히 위축돼있는 5공 핵심들은 민정당의 전도는 거의 끝장난 것으로 보고있다.
이에 비해 이종찬 정무장관 등 중도세력들은 아직 절대절명의 위기로 보진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대부분의 군 출신을 포함한 보수세력들은 보수파가 재등장해 당과 정부의 권위를 되찾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대표주자가 정호용 의원이다.
그는 당내 최대 의원모임인 경구회를 이끌고 있다. 경구회 소속의원은 경북·대구의 지역구의원 25명, 이 지역 출신 전국구의원 10명 등 35명이다.
이중에서 유학성·김윤환·이원조·박철언·강재섭 의원 등은 노 직계거나 그 측근이고, 김용태 의원 등 권익현 전 대표세력이 있는가 하면 채문식·박재홍 의원인 등 5공 인맥도 있어 순수 정호용 파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다. 그는 그보다는 오히려 당내 군 출신의 성원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의원회관 사무실 점거사태이후 적극적으로 당 대표위원으로 나서겠다는 의사를 비추었고 현재의 당 지도부에 거침없이 비판의 화살을 날리고 있다.
이들 보수파는 노 대통령과 그 주변의 대야 협상론을 노골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지난 9개월 동안 협상을 통해 얻은 것은 하나 없고 후퇴만 거듭해왔을 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여권을 약화시키려는 야당책략에 말려 노 대통령 주변이 전씨와 세력다툼을 벌여 그것을 재기불능으로 꺾어버렸고 이제 보수세력을 제거하면 그 다음은 노 대통령 자신이 표적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보수파들은 노 대통령을 직접겨냥하지는 않고 있으나 대신 청와대 주변참모들이나 민정당 지도부가 선거이후의 모든 책임을 감추기 위해 위기상황을 희석시키고 상황을 호도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노 대통령이나 주변세력들이 보수세력 전체가 직면한 위기를 직시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혼자만 살아남으려 한다』고 비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맞서 신 주류들은 보수파들 주장처럼 지금 상황을 강경 노선으로 대응하는 경우 사태만 악화시킬 것이라며 보수파의 생각은 아직 구시대의 권위주의적 극우논리에서 발상전환을 못하고 있다고 비난을 가하고 있다.
이들은 일부 6공 신참세력들을 내세워 『이게 당이냐, 국가냐』고 한 정호용 의원의 의총발언을 문제삼는 등 강경 세력의 「거세」를 노리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당정개편을 통해 신 주류의 이 같은 의도가 반영되면 5공 계나 군 출신 등 보수세력의 당내반발은 무시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세게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신 주류가 노 대통령을 업고 강하게 나온다면 중도세력이나 기회주의적 여당성향이 체질화된 대부분의 의원들은 상황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사태가 해소되는 것도 아니며 여기에 장외 적인 요인이 가세하면 예측불능의 파동이 일수도 있다.
민정당이 커다란 고비에 서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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