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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배후설 일었던 '통큰' 장학사업 펼친 고 최종현 SK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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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 수술을 받은 고(故) 최종현 SK 회장(왼쪽 두번째)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직전인 1997년 9월, 산소 호흡기를 꽂은 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에 참석, 경제위기 극복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 SK]

폐암 수술을 받은 고(故) 최종현 SK 회장(왼쪽 두번째)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직전인 1997년 9월, 산소 호흡기를 꽂은 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에 참석, 경제위기 극복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 SK]

'미국 유학. 5년간 학비·생활비 무료. 다른 조건 없음.'
SK그룹이 설립한 장학재단 '한국고등교육재단'이 1977년에 낸 유학생 장학금 지원 공고 내용이다. 이 공고가 나왔을 땐 학생들 사이에서 "장학금 배후에 사이비 종교 단체나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가 있는 건 아닐까"란 의혹이 퍼지기도 했다.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500달러(약 25만원) 수준이었다. 1년 동안 해외 유학을 하려면 생활비를 포함해 최소한 7500달러(375만원)가 필요했지만, 5년 동안의 학비와 생활비를 공짜로 제공한다는 공고를 학생들이 믿지를 않았던 것이다. 이 같은 파격적인 지원은 고(故) 최종현 SK 선대회장의 뜻이었다. 당시 최 회장은 "돈 걱정이 없어야 24시간 공부에 전념할 수 있지 않겠나"라며 거액의 장학금 지원을 밀어붙였다.

77년 최 회장이 충주의 벌거숭이 산이었던 인등산에서 조림 사업을 할 때도 '땅 투기' 의혹이 일었다. 기업이 지역의 임야를 대거 사들인다는 소문이 퍼지면서다. SK 내부에서도 "이왕이면 수도권 산이 산간 오지 땅에 투자하는 것보단 낫지 않겠느냐"란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최 회장은 이런 의견을 제시한 임원에게 "내가 땅 장수인 줄 아느냐"고 버럭 화를 내기도 했다.

오는 26일 최 선대회장 타계 20주년을 맞아, 재계에선 그의 생전 일화들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최 회장은 73년 SK그룹 창업주이자 친형인 최종건 회장이 타계하면서 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그는 98년까지 25년 동안 섬유회사에 머물렀던 선경직물을 키워 원유정제(SK에너지)·필름(SKC)·섬유(옛 선경합섬)·정보통신(SK텔레콤) 등으로의 사업 확장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일각에선 인수합병(M&A)으로 사세를 키우는 데 성공한 SK를 두고 "운이 좋았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그는 그런 평가를 들을 때마다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10년 이상을 준비한 결과다"라고 답했다.

고(故) 최종현 SK 회장(왼쪽)이 1986년에 선발된 한국고등교육재단 해외 유학 장학생들에게 장학증서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 SK]

고(故) 최종현 SK 회장(왼쪽)이 1986년에 선발된 한국고등교육재단 해외 유학 장학생들에게 장학증서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 SK]

빠르게 사세가 확장하는 가운데서도 최 회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특히 신경을 써 온 경영자로 평가된다. 특히 관심을 쏟은 분야는 인재 양성과 조림 사업이었다. 최 회장은 60년대 미국 유학 시절, 이스라엘이 강소국이 된 것은 국가와 사회가 인재 양성에 나섰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런 그의 경험은 74년 한국고등교육재단 설립으로 이어졌다. "석유는 한번 쓰면 없어지지만, 인간의 능력은 사용할수록 가치가 커진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충주 인등산, 영동 시항산, 경기도 오산 등 4100㏊ 규모 황무지를 사들여 울창한 숲으로 만든 것도 자연을 가꾸면서 동시에 장학 사업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익성 좋은 나무를 심은 뒤 30년 뒤부터 조금씩 벌목하면 꾸준히 장학기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란 발상이었다. 그가 조림사업에 나선 곳들은 현재 자작나무·가래나무·호두나무 등 330만 그루의 나무가 있는 숲으로 변해 있다.

벌거숭이였던 충주 인등산이 울창한 숲으로 변한 모습. 동그라미 안은 고(故) 최종현 SK 회장과 고(故) 박계희 여사가 1977년 인등산에서 함께 나무를 심는 모습이다. [사진 SK]

벌거숭이였던 충주 인등산이 울창한 숲으로 변한 모습. 동그라미 안은 고(故) 최종현 SK 회장과 고(故) 박계희 여사가 1977년 인등산에서 함께 나무를 심는 모습이다. [사진 SK]

경영자로서 그는 '혁신의 승부사'로 꼽힌다. 정보통신 분야가 미래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확신한 그는 94년 주당 8만원 대였던 한국이동통신을 주당 33만5000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인수가가 지나치게 높다고 만류하는 임원들에게 그는 "나중 일을 생각하면 싸게 사는 것이고, 10년 안에 1조~2조원의 이익을 낼 수 있다"고 설득했다. SK텔레콤으로 이름이 바뀐 한국이동통신은 현재 SK그룹의 주력 계열사로 자리 잡았다.

사회적 가치 창출과 함께 신성장 동력 확보에 집중한 최 회장의 경영 철학은 후대로도 이어져 오고 있다. SK는 현재 사회적 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 '사회적 가치' 측정 시스템을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또 SK하이닉스에 이어 반도체 웨이퍼 제작사 실트론을 인수해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하고, 최근에는 바이오 분야로도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선친인 선대 회장에 이어 그룹 경영을 총괄하는 최태원 SK 회장은 "기업은 경제적 가치 외에도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위한 사회적 가치도 만들어 내야만 안정적 성장이 가능하다"며 '사회적 가치 경영' 화두를 전파 중이다.

한편 SK는 최 선대회장의 경영 철학을 계승하기 위한 추모제를 24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서 연다. 이날 추모식에는 각계 인사 5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뜻을 기릴 예정이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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