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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 승부수?…고용·소득 동반 쇼크에 해법은 또 ‘재정 확대’

중앙일보

입력

일주일 전 최악의 고용 성적표를 받아 들고 허둥대던 정부가 또 곤란한 상황에 직면했다. 23일 2분기 빈부 격차가 10년 만에 최대치로 벌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소득 부진은 소득주도성장의 첫 단추부터 잘못 꿰졌다는 의미다. 정부로선 제대로 체면을 구긴 셈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유한국당 김광림 의원의 답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유한국당 김광림 의원의 답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특단의 대책’을 언급할 만한 한데 내놓은 해법은 재정 확대가 전부였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내년도 예산안 당정 협의에 참석해 “일자리 예산을 역대 최고치로 확대해 민간과 공공기업 일자리 창출에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일자리 창출과 소득재분배 개선, 혁신성장 가속화를 위해선 재정을 확장적으로 운용해야 한다는 설명과 함께다.

극도의 부진을 타개할 수단이 결국 재정인 셈인데 이는 그리 새로운 게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내내 확장 재정 기조를 유지했다. 재정을 쏟아부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구상이 바탕이었다. 추가경정예산을 이미 두 차례나 편성했고, 유례없는 세수 호황도 이런 확장 재정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도리어 취업자 수는 많이 감소했고, 분배 지표는 더 나빠졌다. 돈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비판이 적지 않은 상황인데도 김 부총리가 또 한 번 ‘재정 확대’를 언급하고 나선 걸 두고 사실상 직(職)을 건 승부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구체적으로 김 부총리는 “데이터 AI(인공지능) 등 플랫폼 경제와 8대 선도사업에 5조원 이상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연구개발(R&D) 예산은 최초로 20조 이상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여당도 힘을 보탰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무작정 돈 풀자는 것이 아니고 철저히 국민 삶의 개선과 일자리 창출 분야에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당정은 우선 일자리 예산을 크게 늘리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내년 일자리 예산 증가율은 올해 증가율인 12.6%를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어린이집 보조교사를 1만5000명 늘리는 등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충에 나설 계획이다. 기초연금 인상 시기는 앞당기고, 7조4000억원을 투입해 실업급여 보장성을 강화한다는 방침도 나왔다. 저소득층 구직촉진수당을 신설하고, 노후 공공임대주택 시설개선 예산도 300억원에서 500억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이를 두고 반론이 만만치 않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책 실패가 자명한데도 정부가 재정 만능주의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일자리 예산은 집행률이 낮고, 사실상 효과도 거두지 못하는데 검증 없이 예산 늘리기에만 매달리는 건 승부수가 아니라 고집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실효성을 따지지 않고 예산 규모만 늘린다는 것이다.

청년내일채움공제가 그런 예다. 2016년 도입한 내일채움공제는 청년이 300만원을 내면 정부가 1300만원을 보조해 2년 뒤 1600만원의 목돈을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지난해 1946억원의 예산을 확보한 내일채움공제의 집행률은 55%(1077억원)에 그쳤다.

'2019 예산안 당정협의'가 2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 김태년 정책위의장, 김동연 부총리(왼쪽부터)가 회의 전 대화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20180823

'2019 예산안 당정협의'가 2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 김태년 정책위의장, 김동연 부총리(왼쪽부터)가 회의 전 대화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20180823

올해는 3000만원의 목돈을 만드는 3년형을 신설하고, 추경까지 편성했다. 그러나 추경에 편성한 388억원 중 쓴 돈은 8월 10일까지 88억원(22.8%)에 불과하다. 올 5월 국회를 통과한 추경안은 총 3조8000억원(예비비 제외) 규모다. 김 부총리가 “한시가 급하다”며 수도 없이 읍소하며 국회 통과를 요청했다. 그런데 현재 집행률은 71.3%에 그친다. 1568억원의 예산을 편성한 고용창출장려금은 216억원(13.8%)만 썼다. 직업훈련 생계비 대부(37.9%)나 중소기업 청년취업 인턴제(66.8%) 등도 집행률이 낮다. 있는 돈도 다 못 쓰는 처지란 뜻이다.

사실 세수가 예상보다 20조원가량 더 걷히는 올해는 큰 문제가 없다. 내년까지도 세수 흐름은 좋을 것이란 판단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확장 재정은 한국 경제의 건전성을 해칠 수밖에 없다. 일자리나 복지에 투입하는 예산은 일회성 지출이 아닌 경우가 많아서다. 본 예산과 추경을 포함해 약 50조원의 일자리 예산이 투입됐는데 고용 성적표가 이렇다면 정책에 문제가 없는지 검증부터 해보는 게 순서라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김 부총리는 “당초 계획한 만큼 국민 삶의 질을 향상하는 면에서 거시적인 효과가 덜 나와 안타깝고 송구하다”며 “규제 혁신, 세제 개편 등 정책 수단을 총동원해 목표 달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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