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고비 후 더한 위기···"한국車 산업 무너질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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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엔진부품 업체 A사 대표 임모(46)씨는 요즘 잠을 이룰 수 없다. 2년 전만 해도 A사의 최대 고객은 중국이었다. 하지만 사드(TTAAD·고고도미사일방어) 보복으로 중국 수출이 급감한 뒤 지난해 거래처 다변화를 통해 유럽 수출 물량을 늘리면서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

그런데 또 위기가 닥쳤다. 내년 발효되는 일본과 유럽연합(EU)의 경제연대협정(EPA) 때문이다. 2011년 한-EU FTA 발효로 유럽에 수출되는 한국산 자동차 부품은 관세를 면제받았다. 2.5%의 관세를 내는 일본 경쟁업체 대비 가격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EPA가 발효되면 이점이 사라진다. 임 대표는 “미국과 중국 수출 물량이 줄어든 상태에서 유럽 수출로 활로를 찾았는데 이젠 물러설 곳이 없다”고 말했다.

사드 후폭풍과 일본-EU EPA에 이어 미국의 수입차 고율관세가 현실화하면 한국 자동차 산업이 존폐의 위기에 놓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사진은 울산 현대자동차 수출선적부두 모습. [연합뉴스]

사드 후폭풍과 일본-EU EPA에 이어 미국의 수입차 고율관세가 현실화하면 한국 자동차 산업이 존폐의 위기에 놓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사진은 울산 현대자동차 수출선적부두 모습. [연합뉴스]

중국의 사드보복으로 타격을 입은 한국 자동차 산업이 삼중고(三重苦)에 빠질 위기에 놓였다. 우선 내년 발효되는 일본-EU EPA가 걱정이다. 유럽은 주요 자동차 시장 가운데 한국이 유일하게 일본에 우위를 점한 곳이다. 한-EU FTA에 힘입어 가격경쟁력도 갖췄다. 하지만 EPA 발효 이후 7년에 걸쳐 일본의 대 유럽 수출 자동차의 관세가 철폐된다. 대형 완성차 업체가 많은 일본이 파상 공세를 펼친다면 시장 방어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단이 22일 내놓은 ‘일-EU EPA가 우리의 대EU 수출에 미치는 영향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주요 수출품목인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EU가 일본산 승용차에 부과하던 10%의 관세는 단계적으로 철폐되며, 자동차 부품 관세는 즉시 사라진다.

[자료 한국무역협회]

[자료 한국무역협회]

현대기아차는 체코·터키(현대차), 슬로바키아(기아차) 등에서 현지생산 체제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생산해 유럽에 수출하는 물량이 적지 않은 데다 자동차 부품 상당수를 국내에서 조달하고 있다. 국가 간 수출품의 경쟁 정도를 지수화한 수출 경합도 지수에서 자동차 엔진부품은 0.945, 자동차용 타이어는 0.645, 소형 승용차는 0.618을 기록하고 있다. 수출경합도가 1에 가까울수록 두 나라의 수출이 경쟁적이란 의미다. 지난해 한국과 일본의 전체 EU 수출품목 경합도가 0.392였던 점에 비춰보면 자동차 분야에서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알 수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가시화하면서 미국이 수입 자동차 및 부품에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면 충격은 더 크다. 최남석 전북대 무역학과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이 수입차에 25%의 관세를 물리면 향후 5년간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 손실액은 661억7700만 달러(약 74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시장 침체, 일-EU EPA, 미국의 수입차 관세 검토 등 삼각파고는 완성차 업체보다도 부품업체에 직격탄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정부 차원의 정밀조사와 대책 마련이 이뤄지지 않으면 자동차 산업의 기반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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