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베스트] 나이듦은 축복 … 세상사 즐겁게 보이더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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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7호 32면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최근 출간된 신간 중 여섯 권의 책을 ‘마이 베스트’로 선정했습니다. 콘텐트 완성도와 사회적 영향력, 판매 부수 등을 두루 고려해 뽑은 ‘이달의 추천 도서’입니다. 중앙일보 출판팀과 교보문고 북마스터·MD 23명이 선정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미 사회운동가가 본 노년의 자유 #쇠퇴·무기력 아닌 발견·참여 시기 #‘젊은이와 만나라’ 등 구체적 조언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파커 J 파머 지음
김찬호·정하린 옮김
글항아리

32살에 요절한 가수 김광석은 노래했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 점점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79살인 미국 사회운동가 파커 J 파머는 이런 문장으로 책을 시작한다. “나는 매일 모든 것의 끝자락에 가까이 다가간다. 물론 우리 모두는 그쪽을 향해 움직인다. (…) 우리 삶의 가장자리 바로 너머에 드리운 절벽은 무시하기가 어려워진다.”

청춘으로부터 멀어지고 절벽에 가까이 가는 것, 나이듦을 파머는 ‘중력과 은총’으로 요약한다. 그는 감당할 수 있는 몫 이상으로 넘어지고 일어서고 다시 넘어지기를 반복했는데 넘어진 것은 실수와 중력 때문이었고 다시 일어선 것은 은총 덕분이었다.

가장자리로 밀려나면서 인간은 한가운데서 보지 못한 온갖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나이듦은 특권이요 죽음에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 우리를 무덤으로 끌고 가는 중력에는 어떤 해독제도 없지만, 그것을 상쇄하는 힘이 있으니 바로 ‘경쾌함’이다. 자연의 순리를 가볍고 즐겁게 따르는 과정은 ‘나이듦 협력하기’다. 올해 70살이 된 김훈 소설가는 책 추천의 글에서 가장자리를 “삶을 옥죄이는 헛것들의 무게가 빠져나가서 새로운 시야가 열리는 자유의 자리”라고 풀이했다.

파커 파머가 지난 20여 년 해마다 8월이면 찾았던 미국 미네소타 북부의 바운더리워터스 풍경. 연방 야생구역인 이 호수와 숲을 그는 성소이자 천국이라 했다. [사진 Adam Fetcher 2015]

파커 파머가 지난 20여 년 해마다 8월이면 찾았던 미국 미네소타 북부의 바운더리워터스 풍경. 연방 야생구역인 이 호수와 숲을 그는 성소이자 천국이라 했다. [사진 Adam Fetcher 2015]

“우리는 쇠퇴와 무기력이 아닌 발견과 참여의 통로로 나이듦의 프레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 이 책의 부제가 ‘나이듦에 관한 일곱 가지 프리즘’인 까닭이다. 핵심어는 ‘가장자리’ 또는 ‘시듦’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모든 것이 단순하고 선명하게 보이는 가장자리로 나아가는 길이요, 진실을 향해 시들어갈 기회다. 매일 삶의 고통(마음이 부서져 열리기)과 기쁨(유머)을 받아들이면서 마음을 운동시킨다면 환상을 뚫고 실재에 가닿을 수 있다.

파머는 ‘현재 자기 모습 전체를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란 질문에 세 가지 방법을 내놓는다.

첫째 젊은 세대와 접촉하라. 그들에게 조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배우며 에너지를 얻고, 그들이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지원하라. 둘째, 당신이 두려워하는 모든 것을 회피하지 말고, 그것을 향해 움직여라. 벗어날 수 없다면 뛰어들라. 셋째,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자연에서 보내라. 자연은 모든 것에는 저마다의 자리가 있으며 어떤 것도 배제될 필요가 없음을 끊임없이 일깨워준다.

이 책을 번역한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는 2007년과 2012년에 파커 파머를 만나 대화한 뒤 그가 해온 위대한 일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과제를 이렇게 요약한다. “사람들이 안전하게 연결되는 사회적 유대, 깊은 신뢰로 맺어지는 공동체를 요구한다. (…) 그동안 우리는 ‘치유 없는 정치’에 식상해하면서 ‘정치 없는 치유’로 위로받는 경우가 많지 않았는가. 이제 그 두 영역이 결합되어 사람이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

시와 노래를 섞어 가장자리의 위대함을 설파한 파머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를 정확하게 안다며 쓴다. “우리는 모두 결국 자연이라는 엄마의 품으로 갈 것이다. (…) 이 명백한 사실에서 오는 위로가 필요할 때,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숲 속을 더 걷는 것, 산속으로 하이킹을 떠나는 것, 대양을 따라서 거니는 것, 사막을 트래킹 하는 것 등이다. 그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 놀라운 은총이여!”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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