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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쌍둥이 전교 1등에 확산되는 학생부 불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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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윤석만 교육팀 기자

윤석만 교육팀 기자

“이렇게 사건이 자꾸 터지는데 학생부를 어떻게 믿나요?”

서울시교육청의 숙명여고 감사 소식을 접한 한 학부모의 반응이다. 이 학교는 지난 주말(1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이 올라오며 이슈가 됐다. 교무부장이 시험지를 유출해 쌍둥이 자녀가 전교 1등으로 성적이 급상승했다는 주장이었다. 교육청은 13일 특별장학(실태조사)을 실시했고 이틀 만에 정식 감사로 전환했다.

시험지 유출 여부는 감사가 끝나봐야 알겠지만, 두 자녀의 성적이 각각 59·121등에서 1년 만에 문·이과 전교 1등으로 오른 것은 석연치 않다. 입시 업무를 담당했던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강남 명문고에서 갑자기 전교 1등이 되는 것은 드문 일”이라며 “고교 내신을 못 믿겠다는 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지난달 광주에선 학교운영위원장과 행정실장이 짜고 고3 시험지를 빼돌렸다 경찰에 붙잡혔다. 같은 달 서울에선 교사가 일부 학생에게 수학 문제를 미리 알려줬다 재시험을 치렀고, 서울의 또 다른 학교에선 학생들이 교무실에 몰래 잠입해 시험지를 유출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대학입시에서 학생부 비중이 갈수록 커지며 시험지 유출 등 내신부정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중앙포토]

대학입시에서 학생부 비중이 갈수록 커지며 시험지 유출 등 내신부정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중앙포토]

이같은 내신 비리가 자주 발생하는 이유는 대학입시에서 차지하는 학생부의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올해 수험생의 4분의 3(76.2%)은 학생부가 중심인 수시모집으로 대학에 간다. 학생부전형은 교과전형(내신)과 종합전형(학종)으로 나뉘지만, 학종을 택해도 내신 좋은 학생이 유리하다. 그 때문에 학생들은 고교 3년 동안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기 어렵다. “전국 60만 수험생과 경쟁하는 수능이 바로 옆 짝꿍과 경쟁하는 내신보다 공정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수능은 100% 공정한 시험은 아니다. 고교 3년, 길게는 초교부터 12년간의 노력을 한 번의 시험으로 결정짓는 게 부당하다는 건 누구나 안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수능을 신뢰하는 이유는 객관성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학종처럼 부모가 논문을 대신 써주거나, 내신처럼 문제의 오류가 잦고 시험지를 사전에 빼돌릴 가능성도 적다.

지난 7일 국가교육회의가 발표한 공론화 조사에서 시민들은 장기적으로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학생부 비중을 늘리는 데 찬성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수능을 상대평가로 유지하고 비중을 늘려달라고 했다. 시험이 공정하려면 제일 먼저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민심이 정책에 반영될 수 있을지 17일 교육부의 대입개편안 발표에 많은 관심이 쏠린다.

윤석만 교육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