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취재일기

누더기가 된 한국전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장원석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장원석 경제정책팀 기자

장원석 경제정책팀 기자

한국전력이 13일 충격적인 2분기 성적표를 공개했다. 영업손실 6871억원으로 지난해 4분기부터 3분기 연속 적자다. 핵심 원인은 원자력발전소와 석탄발전소 가동률 하락에 따른 전력 구입비 증가다. 2016년 79.9%였던 원전 가동률은 올해 상반기에 58.8%까지 떨어졌다. 전기 1㎾h를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은 원전이 66원으로 석탄(90원)·액화천연가스(LNG, 125원)보다 훨씬 싸다. 저렴한 원전을 돌리지 못하고, 비싼 LNG에 의존하다 보니 수지가 안 맞았다는 얘기다.

한전 경영이 정권의 입김에 따라 요동치는 게 드문 일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 때는 원자재 가격 상승에도 제때 요금을 올리지 못했다. 정부가 물가 관리에 목을 맨 탓이다. 6년 연속 적자라는 암흑기를 보냈던 이유다. 지난 정부 때는 요금 인상 덕에 실적 회복에 성공하기도 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전기라는 공공재를 독점 공급하는 공기업의 숙명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전은 상장기업이기도 하다. 지분의 약 50%는 민간 주주의 몫이다. 불과 2년 전인 2016년 5월 6만3700원으로 최고점을 찍었던 한전 주가는 2년 만에 반 토막이 됐다. 현장에선 “시총 20조 원짜리 상장기업을 정부가 마음대로 주무른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투자자 사이에선 소송 움직임도 관측된다.

적자가 쌓이면 한전도 버티기 어렵다. 이미 한전에는 올 1분기 기준으로 112조원이나 빚이 쌓여 있다. 공기업이 흔들리면 결국 정부가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그 전에 요금을 올리면 되지만 정부는 지난해 ‘5년간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퇴로를 막아버린 셈이다. 설상가상으로 한전은 얼마 전 발표한 여름철 한시적 전기요금 인하 부담도 떠안아야 한다.

멀쩡한 기업을 누더기로 만들어놓은 형국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탈(脫)원전과 무관한 일’이라는 해명에 급급하다. 원전 가동률 하락에 따른 한전의 수익성 악화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다. 정부의 설명대로 ‘당장’ 탈원전과 무관하더라도 앞으로 강도 높은 원전 규제에 따라 한전이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정부가 지난해 에너지 전환계획을 마련하면서 스스로 만든 탈원전 프레임에 갇혀 헤어나오지 못하는 꼴이다. 문재인 대통령 말처럼 “냉방기기 사용이 기본적인 복지”가 되려면 경제성에 기초해 발전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그를 통해 안정적인 수급 전략을 짜야 한다. 지금처럼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를 낮추고, 비중을 높이면 탈원전을 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공허한 설명만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장원석 경제정책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