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측의 보존 과학에 큰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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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남한 조사단이 아버지처럼 따른 북한 학자가 있다. 이기웅(61.사진) 문화보존지도국 조선문화보존사 실장이다. 남한으로 치면 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장? 문화재 보호의 현장 책임자다.

그는 해방둥이다. 해방 두 달 전에 태어나 "두 달 동안 일본인의 억압을 받았다"고 농을 걸 정도로 여유가 있다. 그런 만큼 남한 조사단을 보는 시각도 폭이 넓었다. 북한에 비해 벽화유산이 별로 없는 남측에 대해 '기대 반 우려 반'을 나타냈다. 남한의 분석기기를 일일이 캐묻는 열정을 보였는가 하면 벽화연구 경험이 축적되지 않은 남한 학자들에게 진심 어린 충고도 잊지 않았다.

"실습 차원이 아니길 바랍니다."

이번 조사가 '형식적 진단'이 아닌 고분 보존의 '실질적 대책'을 내놓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는 말이다. 김일성대 역사학부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그는 1981년부터 북한 문화재 일선 기관인 조선문화보존사에서 일해 왔다.

"고구려 고분을 올바로 지키는 정답은 아직 없습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유네스코에서 현장조사를 나오고 북한 관계자들에게 관련 기술을 전수하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할 묘수가 나오지 않아요. 사실 문화재는 창조 즉시 훼손의 길로 접어듭니다. 보존과학은 그 속도를 줄이는 것이죠. 북한 전문가들도 그간 많은 노력을 해 왔지만 남측 학자들이 내놓을 결과를 적극 참고하겠습니다."

그는 "잔가지에 매달리면 나무의 줄기와 뿌리를 볼 수 없다"고 했다. 과학적 데이터가 중요하지만 이를 과신할 수 없다는 것. 유네스코에서 고분 바닥에 물이 찬 약수리고분(평안남도 강서군)을 통째로 옮겨 해체.복원할 것을 제안했지만 '만의 하나' 파손을 걱정해 거절했다고 했다. "자! 기자 선생, 고구려 벽화를 우리만 볼 수 없지요. 후손들을 위해 힘을 모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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