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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취미생활 즐기고 자기계발 힘쓰고… '직장인 문센족' 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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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센터 신풍속도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된 지 두 달째. 직장인의 저녁 시간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우선 문화센터를 찾는 ‘직장인 문센족’이 눈에 많이 띈다. 이들은 직장이나 집과 가까운 대형마트·백화점에 문화센터가 있어 이동 거리가 짧고 일반 학원보다 수강료까지 저렴하다고 입을 모은다. 물론 흥미로운 강좌도 가득하다. 중앙일보 기자 2명이 문화센터에서 평소 배우고 싶었던 강좌를 등록해 퇴근 후 직접 배워봤다.

# 서울시 중구 명동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이보현(가명·32)씨는 ‘주 52시간 근무제’ 덕분에 퇴근 후 시간을 평소 관심이 많았던 요리를 배우는 데 쓰고 있다. 지난달부터 매주 수요일 회사와 가까운 문화센터에서 ‘한식 만들기’ 수업을 듣는다. 그는 “여성 수강생만 있을 것 같아 걱정했는데 남성 직장인도 여럿 있다”며 “회사 얘기도 하면서 수업을 들으면 시간이 금세 간다”고 말했다.

예전의 문화센터 하면 주부 혹은 비(非)직장인을 위한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대부분의 강좌가 퇴근 시간 이전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요즘 저녁 시간표엔 직장인을 위한 강좌가 다양하게 오른다. 야근이 줄어들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실행할 수 있게 된 직장인을 위해서다.

특히 맞벌이를 하는 젊은 부부를 위한 강좌가 눈길을 끈다. 오전 시간에 집중됐던 육아 관련 강좌나 아이와 함께 듣는 수업이 저녁 시간대로 옮겨왔다. 이마트 문화센터에서는 부모와 아이가 함께 오감 체험을 하는 강좌 ‘와글와글 퍼포먼스(28~40개월 대상) 미술’ ‘트니트니 올빼미반(30~40개월 대상)’을 퇴근 이후 시간대에 배치했다. 야근으로 육아를 엄마에게 맡겨뒀던 ‘워킹 대디’를 위한 강좌도 있다. 롯데백화점 문화센터는 ‘아빠 휴직: 대디 스쿨’ 강좌를 개설해 아빠에게 육아 정보를 제공한다.

유행에 민감한 젊은 직장인을 위한 강좌도 증가 추세다. 2000년대 초반 신문사와 백화점이 운영하는 문화센터를 중심으로 업무 역량을 높이는 강좌가 직장인에게 인기를 끌었다면 이젠 ‘이색 강좌’에 수강생이 몰린다.

회사와 가깝고 수강료 저렴…요리·육아 등 저녁 강좌 다양 미디어·SNS 유명인사 강의 

미디어·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스타에게 직접 배우는 강좌가 대표적이다. SNS에 소문난 맛집 대표에게 요리 수업을 받거나 SNS 스타 의사에게 피부 관리법을 전수받는다. 인기 있는 웹툰 작가를 만나 ‘캐릭터 그리기’ ‘컬러링’ 수업을 받을 수도 있다. 유명 인사를 직접 만날 수 있고 그들의 노하우로 자기 계발까지 할 수 있어 젊은 직장인의 반응이 뜨겁다. 이외에도 가을 학기에 개설되는 롯데백화점 문화센터의 ‘여행사진 잘 찍는 법’ ‘수제 맥주 만들기’, 신세계백화점의 ‘친환경 비누 만들기’ ‘베이직 드럼’ 등의 강좌는 모두 조기 마감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인기 가요 악보대로 드럼 치니 스트레스 싹~ 

정심교 기자의 '스트레스 해소 드럼교실' 오후7시~7시50분

열세 살 때부터 독학으로 드럼을 친 지 20년이 넘었다. 하지만 드럼 악보를 볼 줄 모른다. 퇴근 후 집에서 가까운 이마트 가양점 문화센터에 들러 ‘스트레스 해소 드럼교실’ 고급반 수업에 참가했다.

드럼을 연습할 때 필수품인 박자기(메트로놈)는 요즘 스마트폰 앱이 대신한다. 드러머 20년차인 강사 조영철씨가 ‘딱(쉬고) 딱(쉬고) 딱(쉬고) 딱(쉬고)’이란 앙칼진 소리로 박자를 쪼개는 앱을 틀었다. “알엘알(RLR)~ 시~작”이란 강사의 ‘지령’에 따라 드럼 연습용 고무 패드를 리듬에 맞춰 친다. 알(R)은 오른손, 엘(L)은 왼손을 가리킨다. 이렇게 5분간 손을 푼 다음 일렬로 늘어선 드럼 5대 가운데 한 대에 앉았다. 진짜 드럼을 칠 단계다. 양손에 스틱을 하나씩 쥐고 오른발로 베이스드럼을 ‘쿵’, 오른손으로 하이햇심벌을 ‘치’, 왼손으로 스네어드럼을 ‘따’하고 친다면 여러 버전의 조합으로 다양한 리듬을 만들어낼 수 있다.

몸을 푸는 용도로 ‘쿵치따치 쿵쿵따치’란 리듬을 10분가량 연습했다. 정확한 위치를 치는 것, 박자가 빨라지거나 느려지지 않게 속도를 조절하는 것 모두 훈련하는 방식이다. 화이트보드에 드럼 악보가 그려져 있다. 악보 읽는 법을 배우니 처음 접하는 곡인데도 여러 드러머와 똑같은 리듬으로 드럼을 칠 수 있게 됐다. ‘필’ 가는 대로 즉흥 연주를 하거나 기존 곡을 홀로 연습해 따라 쳐본 것이 전부였던 기자에겐 첫 경험이었다.

이 훈련을 마친 후 가수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란 노래를 드럼 악보대로 쳤다. 다음 회 수업은 가수 김태우의 ‘사랑비’다. 악보대로 따라 쳐보니 사랑스러운 비가 내려오는 듯하다. 퇴근 후 시간을 알뜰히 활용해 악보 보는 법을 배우니 준전문가에서 전문가의 영역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갔다는 뿌듯함이 밀려온다.

일러스트의 기초 색칠하기에 몰두하니 힐링

신윤애 기자의 '색연필 일러스트' 오후7시~8시20분

그림에 소질이 없어 ‘곰손’으로 불리지만 용기 있게 ‘색연필 일러스트’ 수업을 신청했다. 업무 시간에 복잡해진 머릿속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정리되며 ‘힐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회사와 가까운 서울 소공동의 롯데백화점 본점 문화센터를 선택했다. 오후 6시에 ‘칼퇴’를 하고 문화센터에 도착한 시간은 6시40분이었다.

“가로 8㎝, 세로 3㎝ 사각형 테두리를 그린 다음에 색연필을 비스듬하게 잡고 최대한 연하고 고르게 색칠하세요. 선이 아닌 둥근 회오리 모양으로 해야 합니다. 이 색칠법은 ‘롤링 스트로크’라고 해요.” 명화처럼 근사한 그림을 그릴 줄 알았지만 시작은 색칠하기였다.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었다. 손힘이 잘 조절되지 않아 부분적으로 연하거나 진해 보였다.

색연필만 이용해 완성한 강사의 작품

색연필만 이용해 완성한 강사의 작품

색칠하기에 집중하고 있으면 중간중간 강사가 와서 조언해준다. 색칠하기 후엔 그라데이션 기법을 연습했다. 원을 그린 다음 원의 중심에서 바깥쪽으로 갈수록 진하게 색칠하는 작업이다. 역시 힘의 완급 조절이 관건이었다. 집중해서 진하게 연하게를 반복해 칠하다 보니 어느새 수업 시간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림다운(?) 그림은 색칠하기를 마스터해야 배울 수 있다고 한다. 다행히 그림 실력은 중요치 않다. 사물이나 그림을 보면서 스케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그리고 싶은 그림을 인쇄해 그 뒷면을 먹지처럼 연필로 까맣게 칠한 다음 스케치북을 밑에 두고 테두리를 따라 그리면 된다. 그림의 테두리 그대로 스케치북에 옮겨진다.

수업이 끝나고 나오려는데 강사가 한 학생의 작품을 보여준다. 결혼식에 들고 입장할 부케를 자신의 청첩장에 그려 넣은 것이었다. 색칠하기, 그라데이션을 마스터하고 원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의지가 ‘활활’ 타올랐다. 힐링하러 갔다가 열정의 불씨까지 지피고 온 수업이었다.

글=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 사진=프리랜서 김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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