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씨 "모든 것 훌훌 털고 싶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지난 3일 연희동으로 전두환 전대통령을 처음으로 공식 방문하여 사과와 해명을 하겠다는 확답을 받아냈던 윤길중 민정당 대표가 1주일간 침묵을 지키다 마침내 입을 열어 전씨의 최근 심경과 두 사람간의 대화 등을 털어놓았다.
9일 아침 연희동 20평짜리 아파트 자택에서 아침 운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오곡으로 만든 건강식 죽을 들며 한시간 남짓 전전대통령의 심경 등에 관해 얘기했다.
윤 대표는 『전 전 대통령이 이미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릴 결심을 하고 있으며 자신의 일로 더 이상 나라가 혼란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 하루빨리 문제가 매듭지어지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그의 심경을 밝혔다.
-기자회견에서 발표했던대로 사과와 해명만을 요구했는가.
『사과·해명 뿐 아니라 모든 것을 훌훌 다 털어버리고 알몸으로 서있어 주기를 얘기했다. 인간은 공수래공수거라는 점도 얘기하며 모든 것을 털어버릴 때만이 비로소 다시 살 수 있다는 점을 얘기했다.』
-이에 대한 전씨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그 양반은 「오도코」(남자)다운 기질이 있는 분이다. 나의 말을 흔쾌히 받아들이며 사소한 것에 연연해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얘기하더라.』
-요즘의 국정감사나 학생들의 데모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내가 요즘 세태를 「일견폐허만견폐실」이라고 했다. 동네의 개 한 마리가 헛것을 보고 짖으니 온 동네의 개가 사실인줄 알고 따라 짖는 세태라는 얘기다. 이런 세상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점을 얘기했다.』
-재산 환원 얘기를 구체적으로 했는가.
『내가 연희동집까지 내놓으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으나 모든 것을 훌훌 털고 홀몸으로 남으라는 얘기를 했을 때 이심전심으로 그 같은 결심을 이미 하고 있다는 점을 느꼈으며 그도 그렇게 하겠다는 뜻을 얘기했다.』
-항간에는 전씨가 많은 재산을 감추어두고 있다는 의심이 퍼져있는데….
『전 전 대통령도 그런 국민의 의심을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전 전 대통령은 연희동의 집과 대통령취임 전에 사두었던 강남의 땅밖에 없는데 이를 내놓는다고 국민이 믿어줄 것인가를 걱정하고 있었다.
만일 재산으로 그것만 내놓으면 그것밖에 안되느냐는 비난이 있을 것이고, 그렇다고 혹시 있는대로 다하여 가령 1백억원이라 하고 내놓는다면 그렇게 많이 해먹었느냐는 또 다른 비난이 따르는 것을 걱정하고 있더라.』
-실제로 당에서 알고 있는 전전대통령의 재산은 얼마인가.
『당에서는 전전대통령이 공직자재산등록때 했던 재산밖에는 알지 못하고 있다.』
-호주 등 해외에 재산을 많이 빼돌렸다는 소문이 있지 않은가.
『당이나 정부로서도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본인도 공정한 조사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당도 그러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본다. 해외건 국내건 간에 다른 재산이 나온다면 당연히 그것도 사회에 환원돼야 한다고 본다.』
-전씨가 노 대통령과의 면담을 희망한다고 했는가.
『노 대통령을 꼭 만나자는 얘기는 아니었다. 전전대통령이 걱정하는 것은 자신이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렸을 때 모든 문제가 진짜로 다 해결될 수 있느냐를 걱정했다. 그 같은 걱정에서 노 대통령이 확실한 조치를 내려줄 것을 희망하고 있는 심정이더라.』
-재산환원 등은 어려운 문제인데 어떻게 쉽게 결심이 됐는가.
『전 전 대통령은 자신이 모든 것을 털어버리겠다고 작정한 것은 애국하는 마음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가진 모든 소유를 털어버려 사회가 조용해진다면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비록 자연인으로서는 큰 손해를 보더라도 이를 꿋꿋하게 감수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1회의 조치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야당의 협조가 필요할텐데….
『전 전 대통령도 그 점을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애국하는 마음에서 희생을 감수하듯 야당도 애국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문제에 접근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사실 요즘의 야당을 보면 문제해결보다 정치공세에 주력하고 있는 느낌이다.
전 전 대통령이 단안을 내렸을 때 재야나 일부 학생들이 이를 거부하고 다시 소란을 피울 때 야당이 앞을 막고 애국적 차원에서 사태수습을 호소하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노 대통령과 전씨와 면담이 있을 것인가.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은 모든 것이 결정된 후에야 가능하다고 본다. 두 사람이 그전에 만나서 이러쿵 저러쿵 얘기하면 국민의 눈에는 마치 협상이나 하는 듯 비칠 것이 아닌가. 국민도 그러한 자세라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연희동을 떠난다면 낙향하는 것이냐.
『우리 국민은 그렇게 매몰차지 않다. 전 전 대통령이 진정으로 사과하고 훌훌 털어버릴 때 다시 감싸는 마음들이 생겨날 것이다. 전 전 대통령이 살 곳이 없다면 우리 집에라도 모셔오겠다.』 <문창극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