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교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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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천장 꼭대기의 선 루프를 통해 가을 햇볕이 찬란하게 교실 안으로 쏟아지고 있다. 스페인풍 붉은 기와지붕과 흰 벽이 조화를 이루면서 옹기종기 이어지고 구자형의 집 중앙에는 중정이 4개의 교실로 이어진다. 수업이 끝나 중정으로 쏟아져 나온 어린이들이 줄넘기 공놀이를 하며 뛰어 논다.
교실이 뜰로 바로 이어지는 복도 없는 교실, 4각형의 길다란 상자를 연상시키는 잿빛 색깔의 규격품 건물이 아닌 주택가를 연상시키는 정감 있는 학교건축이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물론 우리 나라가 아닌 일본에서 최근 일고 있는 「열린 학교」건물의 한 풍경이다.
먼지를 뒤집어써 우중충한 모양의 길다란 교사, 한켠으로 길게 뻗는 복도, 7m×9m(20평)의 교실 크기, 이것이 일제시대부터 지금껏 내려오는 우리네 학교 교실의 모습이다. 그나마 천막교실과 콩나물교실을 거쳐 아직도 2부제 수업을 면치 못하는 주제에 잘사는 이웃나라의 호화교실 타령이 웬말이냐고 들이대겠지만 그게 아니다.
우리 나라 초·중·고 교사의 상당수가 전쟁 전 후에 세워진 것이어서 노후되었고 나머지는 그후 새로 세워진 신축건물이다. 문제는 새롭게 세워지는 건물 마저 옛것을 그대로 따르는 일렬종대식 공간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닫힌 사회의 닫힌 학교, 닫힌 교실에 대한 아무런 회의 없이 학교란 으례 그런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학교를 지어왔다.
문교부는 89년도 지방재정교부금을 지난해 보다 12% 늘린 3조4천2백억원을 확정했다고 한다. 이 돈으로 93개의 초·중·고등학교 교사를 신축하고 낡은 교실 3천4백개를 개축하는 등의 의욕적 사업을 벌이겠다고 했다.
화려하게 짓자는 것이 아니다. 기왕 새롭게 짓고 다시 고치려한다면 교육공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일렬종대식의 명령조 공간이 아닌, 함께 어깨를 비비며 놀 수 있는 놀이의 공간과 대화와 토론을 통한 배움의 공간을 전문가들의 활기찬 참여를 통해 새롭게 창출하자는 것이다.
열린 교실이 바로 열린 사회로 나아가는 늦으면서도 가장 빠른 지름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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