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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2006 동국대학교 100주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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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8일 오전 동국대 건학 100주년 기념식이 교내 만해광장에서 열렸다. 축하사절로 참석한 박경조 성공회 주교와 정산 천태종 총무원장이 진월 동국대 정각원장, 선각 조계종 예경실장(뒷줄 왼쪽부터)과 함께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김형수 기자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의 1931년 모습. [동국대 제공]

동국대학교가 8일 100주년을 맞았다. 연세대.이화여대.고려대에 이어 국내 사학 중 네 번째다. 일본이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은 을사늑약 한 해 뒤인 1906년. 전국 17개 사찰의 불교계 선각자들은 5월 8일 '교육구국'을 내걸고 학교를 세웠다. 처음 이름은 명진학교였다. 초창기에는 승려들만 입학할 수 있었다. 첫해 입학생은 100여 명의 승려였다. 이 중엔 민족사의 걸출한 승려시인 만해 한용운(1879~1944)이 있었다. 명진학교는 그 뒤 불교사범학교.중앙불교전문학교.혜화전문학교 등으로 불리다 광복 후인 46년 9월 20일 동국대로 이름을 바꿨다.

◆ 동국대의 인물들=불교 교육기관으로 출범한 동국대는 문학.대중문화.경제.정치 분야에서 숱한 인재를 배출했다. 동국대는 특히 문인과 대중 예술인의 요람이었다.

'님의 침묵'으로 유명한 만해 한용운은 1906년 1회 입학생이었다. 그는 3.1운동 때 민족대표 33명과 독립선언을 이끄는 등 민족의 정신적 지주였다. '국화 옆에서'의 미당 서정주는 35년 입학생이다. 96년 명예교수 재직 때 '동국대학교 개교 100주년을 앞두고'라는 축시를 남겼다. 청록파 시인 3인방으로 유명한 동탁 조지훈(1920~68)은 미당의 3년 후배다. 고려대 교수를 지낸 그는 '승무' '완화삼' 등의 시를 남겼다.

문인의 명맥은 화려하다. '슬픈 목가'의 신석정, '낙화'의 이형기, '태백산맥'의 조정래, '장길산'의 황석영 등 수많은 문사(文士)들이 필명을 떨치고 있다. 조선미(국문과 4)씨는 "쟁쟁한 선배들이 문학계를 이끌고 있어 너무 자랑스럽다"며 "여류 시나리오작가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대중예술 분야 인맥도 남다르다. 1960년 연극영화과가 개설된 게 출발점. 이덕화.채시라씨 등 유명 스타만 30명 가까이 된다.

재계의 인맥도 두껍다. 김평기 기아현대차그룹 부회장, 정상영 KCC 명예회장, 정연주 삼성엔지니어링 사장 등이 동문이다. 6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정계를 풍미했던 양대 세력은 상도동계(김영삼 전 대통령)와 동교동계(김대중 전 대통령)다. 동국대는 두 계파 가신 그룹의 대표 얼굴을 배출했다. 바로 최형우 전 의원과 '불곰'으로 불렸던 김동영 전 의원, 그리고 권노갑 전 국민회의 고문이다. 17대 국회에선 열린우리당 최재성 의원이 활동 중이다.

83학번 산악인 박영석씨는 10일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에 나선다. 세계 최초로 산악 그랜드 슬램(히말라야 8000m급 14좌,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 남.북극 횡단)을 달성한 박씨는 100돌을 기념해 정상을 밟을 예정이다.

양영유.고정애 기자<yangyy@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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