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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호근 칼럼

사지선다에 함몰된 백년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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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서울대 교수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서울대 교수

신입생 다섯 명이 둘러앉은 글쓰기 강좌. 고즈넉한 분위기에 흡족해진 교수가 고전적 질문을 던졌다. “지금까지 읽은 책 중 가장 인상적인 걸 말해 봐.”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할 수 없이 표정이 진지한 학생에게 물었다. 답이 나왔다. “걍….” “걍?” 그래 이 조어(造語)라면 교수도 익숙하다. 가족 문자에 수시로 등장했으므로. 즉시 다그쳤다. “걍, 뭐?” “나미야 백화점의 기적!” 학생은 안도했고, 교수는 허를 찔렸다. 베스트셀러에 오르내렸던 그 제목이 낯설진 않았지만 톨스토이·괴테와는 사뭇 다른 책이었다. 교수는 물러서지 않는다. “가장 인상적인 내용을 말해 봐.” “걍….” 읽다 말았다는 뜻이다. 그 학생은 책을 다 읽고 리포트를 제출했다. 그 덕에 교수는 ‘나미야 백화점’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았다.

넓고 얕은 지식을 평가하는 건 #이제 검색 엔진에 맡기자 #귀로 듣고 입으로 나가기보다 #지식은 가슴에 담아 발효해야 #우리 청소년 위한 교육 혁명은 #사지선다 버리기에서 출발해야

교가(校歌)에도 뽐냈듯 ‘이 나라의 준재들이 다 모여’든 서울대에 공대 교수들은 미적분을 못 푸는 신입생이 수두룩하다고 난리고, 인문대 교수들은 프랑스 혁명을 모른다고 혀를 찬다. 5·16도 모르는 판에 얼마 전 작고한 최인훈을 모른다고 대수냐? 괴테는커녕 이광수를 안 읽었다고 세상이 무너지나? 내신 1등급, 수능 370점 이상인 준재들이 무엇을 배웠는지 교수는 가늠할 길이 없다. 다만 그 정도는 ‘걍’ 배웠고 그 정도는 ‘걍’ 읽었다고 짐작할 뿐이다. 그런데 배우지 않았고, 읽지 않았다.

이런 교육 현실을 탄식해야 할까, 아니면 ‘탄식하는 교수’를 탄식해야 할까? 헷갈린다. 한국 교육의 민낯이 보이기 때문이다. 평소 평등주의를 주창해온 김상곤 교육부 장관도 이게 헷갈려 입시안을 국가교육회의에 위임했는데 누군가 참신한 아이디어를 냈다. 만능키, 공론화위원회! 그런데 헷갈리긴 마찬가지였다. 최종 4개 안(案)의 장단점을 판별하기 어려웠고, 더 나은 대안이 있을 듯했다. 결국 판단유예! 김영란 위원장은 소신 결여, 책임회피 교육부에 대한 ‘시민의 준엄한 질타’라고 멋지게 마무리했다. 국가의 백년대계가 사지선다에 함몰될 뻔했다.

송호근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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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결의 원인은 두 가지다. 공론화위원회가 활용한 5점 구간 리커트 척도는 대체로 중앙값 ‘보통이다’(3점)로 회귀하는 경향이 있고, 참여 인원이 늘어나면 더욱 그렇다. 거기에 ‘소득계층별 격차 완화’ 대 ‘미래혁신 교육’ 구도에 수시/정시, 내신/학종, 수능절대/상대평가 간 짝을 맞춰내기는 애초에 무리였다. 전문가 1000명이 숙의해도 ‘미결’로 마감했을 거다. 그래도 시민참여단의 속내는 드러났다. ‘정시 확대, 수시 축소, 수능 절대평가’인데, 수시와 학종이 촉발하는 계층 격차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평등주의적 심성은 시민성의 중요한 덕목이나 미래혁신 교육의 동력과 배치될 수 있다.

이 쟁점이 처음부터 문제였다. 교육부는 현 중3을 ‘미래혁신 교육 1세대’로 규정해두고 철학과 비전 부재 상태를 1년 이상 끌었다. ‘2022년 수능 과목구조와 출제범위(안)’도 공론에 띄웠을 뿐이다. 기하와 과학 II(4과목) 제외를 깊이 우려한 13개 과학단체가 합동격문을 내놨는데도 교육부는 말이 없었다. 21세기 ‘융합문명의 시대’를 이끌 ‘교육 한국’의 근본원리는 무엇인가? 넓고 얕은 지식을 두루 갖춘 ‘박이천학(博而淺學)형 인재’인가, 적성과 장기에 선택 집중하는 ‘협이심학(狹而深學)형 인재’인가? 수능은 전자에 적합한 20세기 대량생산시대의 평가방식이다. 그건 검색엔진에 맡겨두자. 이참에 아예 수능을 폐지하고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같은 자격시험을 도입하면 어떨까. 바칼로레아는 일반, 공업, 직업 3종으로 나뉜다. 대학진학생(일반)은 고2 때 자신의 적성에 따라 과학, 사회, 문학, 예술을 선택할 수 있다. 철학은 기본이다. “현실은 수학법칙에 따르는가?” 과학문제가 이렇다.

구이지학(口耳之學), 귀로 듣고 입으로 나가버리는 교육은 가슴에 남지 않는다. 1780년 연행사절로 갔던 연암(燕巖) 박지원이 청인(淸人)과 나눈 필담에 나오는 얘기다. 지식을 가슴에 담아 발효해야 성벽, 구들장, 수레, 시장점포가 새롭게 보인다. 21세기 대비,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도입해도 선생이 없고 시험문제도 못 낸단다. 정시, 수시, 수능, 내신, 학종을 아무리 맴돌아 봐야 13과목을 달달 외운 베이비부머 세대의 프레임을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사지선다 버리기! 교육혁명의 출발점이다.

혁신성장을 외치는 이 시대에 미래교육의 동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기왕 원점에 돌아왔으니, 해방 후 70년 지속한 ‘구이지학’ ‘박이천학’ 평가 지옥에서 미래세대를 놓아주자. 감성을 장착한 인공지능 로봇이 거리를 활보할 2050년에도 우리의 청소년들이 사지선다형 문제에 매달릴 모습을 생각하면 끔찍해서 하는 말이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서울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