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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등에서 음악 흘러나왔다···몸에 붙이는 '투명 스피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 이탈리아 작곡가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라 캄파넬라'다. 음악은 '손등'에서 들려오고 있다. 그런데 손에는 스피커도 이어폰도 쥐여 있지 않다. 투명한 필름 한장만 붙어 있을 따름이다.

필름 형태의 ‘투명 스피커’와 ‘투명 마이크로폰(음성 인식장치)’이 개발됐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고현협 교수팀에 의해서다. 이 기기들은 은이 함유된 ‘고분자 나노막’ 소재로 이뤄져, 가볍고 투명하며 다양한 사물에 부착될 수 있다. 음성지문보안ㆍ로봇공학 등 여러 분야에 응용이 가능할 전망이다.

이 기술은 미국과학협회(AAAS)에서 발행하는 국제과학전문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8월 3일 자에 발표됐다. 전기 전도성과 같은 기계적 특성도 기존 기기들보다 뒤지지 않는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얇고 잘 찢어지는 ‘투명 나노막’...은 소재 이용해 극복

UNIST 연구팀이 개발한 초박막형 투명 스피커는 100나노미터로 매우 얇아, 굴곡진 곳이나 신체 부위에도 잘 달라붙는 특징이 있다. [UNIST]

UNIST 연구팀이 개발한 초박막형 투명 스피커는 100나노미터로 매우 얇아, 굴곡진 곳이나 신체 부위에도 잘 달라붙는 특징이 있다. [UNIST]

어떻게 스피커와 음성 인식장치를 투명 필름으로 만들어 냈을까. 핵심은 '은'에 있었다. 투명 기기들의 소재인 ‘나노막’은 나노미터(nm) 즉, 10억 분의 1m 두께의 매우 얇은 막이다. 고분자 나노막은 어디든 잘 달라붙고 무게가 가벼워 활용 가능성이 높았지만, 얇기 때문에 잘 찢어지고 전기전도성이 없다는 한계가 있었다.

고 교수팀은 기존 고분자 나노막에 ‘은 나노와이어’를 함몰시켜 두 단점을 해결했다. 은 나노와이어는 전기가 잘 통하는 ‘전기 전도성’이 높은 소재다. 이를 이용해 은 나노와이어 그물 구조를 형성했고 결국 100nm 두께의 나노막에 전기를 통하게 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은의 투명한 특성 때문에 자연스레 ‘투명 나노막’이 됐다.

‘열음파’ 이용하는 스피커ㆍ충전 필요 없는 마이크로폰

투명 기기들은 소재만큼이나 독특한 원리로 작동된다. 스피커는 '열음파'를 사용한다. 나노 스피커에 전기를 흘려보내면 스스로 온도 조절을 하며 주변 공기를 팽창ㆍ수축시켜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고 교수는 “기존의 스피커는 전기신호를 진동으로 바꿔 음파를 발생시키는데 이와 전혀 다르다”며 “가볍고 투명한 소재에서 스피커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방법을 달리했다”고 설명했다.

마이크로폰은 목에 부착돼 성대의 떨림으로 음성을 인식한다. 사람마다 고유의 음성 주파수가 있기 때문에 개인을 식별할 수 있고 보안 기술에 응용될 수 있다. [UNIST]

마이크로폰은 목에 부착돼 성대의 떨림으로 음성을 인식한다. 사람마다 고유의 음성 주파수가 있기 때문에 개인을 식별할 수 있고 보안 기술에 응용될 수 있다. [UNIST]

마이크로폰은 목에 부착돼 성대의 떨림으로 음성을 인식한다. 나노막이 진동하면서 생긴 마찰력을 전기 에너지로 변환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배터리가 필요 없다. 센서가 수집한 목소리의 아날로그 신호를 전기 신호로 바꿔서 분석하면 음성 식별이 가능한데, 사람마다 고유한 음성 주파수 패턴을 가지므로 음성보안에도 활용할 수 있다.

가볍고 투명해 로봇공학ㆍ보안기술ㆍ웨어러블 산업 등 활용도 높아

이들 투명 기기의 세 가지 장점은 가볍고 투명하며 기계적 특성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로봇공학에 이 기술을 접목하면 로봇은 생동감을 부여받는다. 공동 제1 저자인 조승세 UNIST 에너지공학과 석‧박사통합과정 연구원은 “로봇에 이 기술을 적용하면 스피커는 사람의 입처럼, 마이크로폰은 귀처럼 쓰일 수 있다”며 “향후 목소리로 전자기기를 작동시키는 ‘음성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구현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고 교수는 “사물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음성인식ㆍ음성지문보안 등에서 센서 기술이 크게 주목받는 만큼, 이번 연구도 산업적 파급력이 클 것”이라며 “극히 가벼운 특성 때문에 웨어러블 전자산업 등에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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