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포럼

미국 인권특사의 과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미국 정부의 제이 레프코위츠 북한 인권담당 특사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가문의 총애를 받고 있다. 아버지 부시 정부 시절엔 백악관 국내정책회의 부비서관으로 발탁됐다. 현 부시 대통령하에선 교육, 건강보험, 교통, 줄기세포 연구 등 국내 정책의 모든 분야에서 1급 조언자였다. 지난해 8월부터는 그의 행보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현직을 맡고 있다.

그는 최근 부시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후 가장 감동이 깊었다는 만남'을 주선해 더욱 주가를 올렸다. 그 만남이란 탈북자 부부와 딸, 일본인 납치자 가족들의 백악관 예방이었다. 특히 '초강대국 대통령과 탈북자의 일곱 살 난 딸의 만남'이라는 폭발력 있는 이벤트를 실현시킨 것은 그의 파워나 수완이 간단치 않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우리 정부 당국자들의 시선은 차갑다. '남북 관계의 실상은 모른 채 무턱대고 설치는 아마추어'라고 치부한다. 그럴 만도 할 것이다. 정부의 대북 접근 방식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활동상을 평가절하만 할 일은 아니다. 우리 정부가 응당 해야 했으나 제대로 하지 못한 일을 대신 해주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인류 보편의 가치인 인권의 훼손이나 범죄행위인 납치에 대해 북한 당국에 할말은 하겠다는 그의 신념은 어찌 보면 탓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레프코위츠 특사가 제기하고 있는 개성공단 비판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 같다. 접근방식이 단선적이고, 편협하기 때문이다. 이 공단 노동자의 임금 수준은 다양하다. 이론적으로 가장 못 받는 사람의 월 임금은 최저임금 50달러에서 사회보장 시책비 15달러를 공제한 35달러다. 그러나 야근.휴일수당 등을 합치면 평균 67달러다. 따라서 '하루 2달러 미만의 임금'이라는 그의 주장은 수치상으로는 틀린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공단 밖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임금이 14달러 수준이라는 점은 외면했다. '하루 2달러'라는 표현을 쓴 것도 뒷맛이 개운치 않다. 북한의 임금체계는 고려하지 않고 '고작 이것밖에 안 돼'라는 측면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북한 노동자들이 우리 기업으로부터 직접 임금을 받지 않는 것은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임금 직불(直拂) 문제는 북측 관련법에도 명시돼 있고, 남북 간에도 이미 합의된 상태다. 다만 심각한 달러 부족을 겪고 있는 북측의 사정상 유예된 상태다. 그대신 임금은 북한 당국으로부터 수령하지만, 우리 기업이 노동자 개인에게 급여명세표를 확인시키는 절차를 도입한 것이다. 물론 북한 당국이 노동자 임금의 일정 부분을 강제로 회수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초기에는 없던 이런 식의 투명성 확보 절차가 마련된 것 자체가 진전이다. 그럼에도 개성공단 운영의 긍정적 변화 추이에는 눈을 감고 '모니터링이 안 된다' '저임금이다'라고만 몰아붙이는 것은 편협한 사고다.

그의 이런 시각은 '나쁜 행동에는 보상이 없다'는 미국의 기본 외교정책과도 어긋난다. 열심히 일하고 이윤이 나면 월급을 받는 것을 '나쁜 행동'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북 압박을 위한 전략적 측면에서도 타당성이 없다. 북.중 국경 1300km가 뚫려 있는데 개성공단을 차단해 봐야 얼마나 효과가 있겠는가. 남북 윈-윈 사업의 전형인 개성공단에 대한 이런 과도한 비판은 보수.진보를 떠나 한국 국민의 정서와도 맞지 않는다. "미국이 남북관계를 이해하는 쪽으로 북한에 대한 관점을 바꿀 때가 됐다"는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의 발언을 유념하길 권한다.

안희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