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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제동 걸린 영국 원전 수출, 탈원전의 저주 아닌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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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영국에 원전을 수출하기 위한 한국전력공사의 프로젝트에 제동이 걸렸다. 한전이 총 사업비 150억 파운드(약 22조원) 규모의 무어사이드 원자력 발전소 프로젝트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잃어서다.

무어사이드 원전 개발 사업권을 가진 뉴젠의 모회사인 일본 도시바는 지난달 한전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 해지를 통보했다. 지난해 12월 한전은 중국 국영기업 등을 제치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산업자원부는 원전 계약 및 운영 방식을 둘러싸고 양측 의견이 엇갈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기류가 이번 협상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현지에서 나온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한국의 정권 교체와 한전 사장이 바뀌면서 불확실성이 생겼다”고 보도했다. 자국에서는 원전을 더는 짓지 않겠다면서 외국에 원전을 수출한다는 건 자가당착(自家撞着)으로 보일 수 있다. 원전을 지으면 30년 정도는 가동해야 한다. 이 기간에 유지·보수를 위해 부품 공급 등이 원활해야 하며 전문 인력도 갖춰야 한다. 원전을 건설하지 않는데 전문 인력이 있을 턱이 없고, 부품 등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이 버틸 리가 없지 않은가.

국내에서는 신고리 5·6호기 건설이 완료되는 2021년 이후에는 원전 건설의 씨가 마른다. 그때가 되면 지금도 중국 등에서 호시탐탐 노리는 전문 인력들은 외국으로 빠져나가고, 일자리를 만드는 중소기업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영국 원전 협상은 완전히 깨진 게 아니다. 정부는 적극적으로 추가 협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탈원전 정책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탈원전 정책을 공론에 부쳐 국민에게 의견을 물어야 한다. 지난 50년간 키워 온 원전 산업 생태계가 무너지는 건 국가적 손해이자 재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