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구 민족예술사 완전 복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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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의 납-월북 음악가·화가 등의 작품 해금은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적극화한 대 북방개방정책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소련·중국·동구권 등과의 대 공산권 교류를 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정부의 외교정책을 큰 울타리로 한 이번 납·월북 예술인들의 작품 해금은 여러 측면에서 시사하는바 크다.
첫째는 남북분단 극복을 위한 「민족화해」의 성격을 가지면서 통일을 앞당기는 진취적인 노력으로 평가될 수 있다.
통일에 전제되는 민족 동질성의 회복은 우선 문화예술의 측면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따라서 사상성으로 모든 것을 구분해온 철옹성의 문화예술정책은 결과적으로 민족동질성 회복에 아무런 도움이 안됐다는 점을 감안할 때 오히려 이번 정부당국의 해금 조치는 때늦은 감마저 없지 않다 하겠다.
둘째는 이데올로기와 문화예술의 분리라는 전향적인 정책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것을 이데올로기의 자로 재단해 보면 냉전체제의 문화예술정책으로부터의 사상과 문화예술 분리는 세계무대를 지향하는 선진조국의 비상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끝으로 그 동안 반쪽으로 존재해 왔던 우리의 예술사를 완전하게 복원시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있다는 점이다.
또 납-월북 예술인의 작품 해금은 우선 해방이후 서구의 문예사조에 일방적으로 빠져들었던 우리예술 정신에「민족적인 요소」를 일층 부각시키고 찾아내는 작업을 활발하게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음악의 경우에 있어 김순남·이건우 등이 만들었던 「조선 음악가 동맹」은 일제의 잔재와 서구적 편향을 배격하고 우리의 전통에 뿌리박은 음악을 만들어 내려는 작업에 충실했던 것으로 평가돼봤다.
이들의 작품이 공개됨으로써 우리 음악은 서구 음악에 경도 되었던 편향성을 극복할 수 있는 신선한 충격과 새로운 미래지향의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음악가들은 이 같은 음악사적 의미 외에도 소설가 박태준씨가 작사한 『물새 발자욱』등 민족적 서정에 바탕으로 한 가곡·동요 등이 공개됨으로써 팝송 등에 경도 되는 젊은 세대에게 민족적 서정을 접할 수 있게 한 것도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한국음악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곡가 김순남·안기영·이건우 등의 주요 작품들이 해제된 데 대해 음악인들은 『단절됐던 민족주의적 음악의 흐름이 이어지게 됐다』고 반긴다.
『이번 해금 전까지의 한국음악사는 애꾸눈』이라는 음악평론가 박용구씨는 홍난파·현제명 등을 한국음악 초창기와 제1세대라고 한다면 이번에 해금된 김순남·이건우 등은 제2세대인 셈』이라며 만일 그들이 계속 남아있었더라면 19세기말 서양에서 나타난 국민주의 음악이 한국에서도 형성됐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정부가 27일 전시 등 일반공개를 포함한 해금의 대상자로 발표한 납-월북 화가는 모두 41명이다. 이는 당시의 상황이나 경위가 어떤 것이었든 북으로 갔던 화가를 차별 없이 망라한 숫자인데 이들을 장르별로 구분해보면 서양화가 31명, 동양화가 6명, 조각가 4명 등이다.
정부는 해금조치를 발표하면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정부수립 이전에 발표된 순수한 미술작품에 한해일반공개를 허용한다』는 전제조건을 앞세우고 있으나 지금까지 알려진 납-월북 작가의 대상작품들이 이데올로기 성향을 표출하기보다는 풍경이나 정물·인물, 산수·화조 등 비 이념적인 화제로 그려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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