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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직격 인터뷰

"인건비만 6억 늘어…이대로면 다 죽는다" 유망 中企 사장의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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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종윤 기자 중앙일보 편집국장

[김종윤의 직격 인터뷰] 신정기 에스케이씨 대표와 최저임금

신정기 사장은 최저임금 결정 때 절박하게 뛰었다. 헛수고였다. 피로가 쌓였다. 결국 눈에 탈이 났다. 그래서 선글라스를 끼고 인터뷰를 한 그는 ’공장을 계속 돌릴 수 있을지 잠이 안 온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신정기 사장은 최저임금 결정 때 절박하게 뛰었다. 헛수고였다. 피로가 쌓였다. 결국 눈에 탈이 났다. 그래서 선글라스를 끼고 인터뷰를 한 그는 ’공장을 계속 돌릴 수 있을지 잠이 안 온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눈이 아파서, 이런 모습으로 손님을 맞아서 미안합니다.”

직원 160명 중 외국인 80명 #단순직 80% 최저임금 대상 #2~3년내 50% 문 닫을 수도 #지급능력 고려해 정책 펴야 #중앙회, 최저임금 이의신청 #지역별·규모별 조정 필요 #최고 공장 만드는 꿈 있지만 #미래가 불안해 잠도 못 이뤄

아스팔트를 녹일 것 같은 폭염이 거리를 달구던 지난 23일 오후. 경기도 시흥시 시화공단에서 만난 신정기(66) (주)에스케이씨 사장은 검은 선글라스 차림이었다. 눈병이 나서 선글라스를 썼다고 했지만 피로가 쌓인 그의 표정에는 ‘허탈·불안·걱정’이 담겨 있었다. 에스케이씨는 플라스틱 사출 도금 전문업체다. 업력이 36년이나 된 강한 중소기업이다.

국내외 자동차 업체에 엠블렘, 라디에이터 그릴, 허브캡 등을 납품한다. 업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경기도 유망 중소기업, 경영혁신형 중소기업, 벤처기업 등의 인증을 받았다. 신 사장은 2011년에 석탑산업훈장도 받았다.

이런 그가 “요즘이 제일 힘들다. 걱정돼서 잠을 못 잔다”고 말했다. “평생을 기업 일구는 데 바쳤는데 앞으로도 사업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말을 흐렸다. 유망 중소기업 사장이 왜 힘겨워할까. 그의 말 속에서는 왜 중소기업의 눈물이 배어 있을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신 사장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시작했다.

왜 힘드나. 최저임금 급격 인상 때문인가.
“(그는 헛웃음부터 지었다.) 우리 공장에는 자동차 엠블렘이나 허브캡, 그릴 등을 포장하고 외부에 보내는 단순 노동자가 많다. 직원이 150~160명인데 외국인 노동자가 80명이다. 단순 작업하는 노동자의 80%가 최저임금 대상이다. 올해 최저임금이 16.4% 오르면서 인건비만 한 달에 4800만 원 더 들어간다. 1년이면 대략 6억 원이 더 든다. 여기에 환율 변동, 원자재 가격 상승 등 경영 악화 요인이 많다. 특히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수입 자동차에 25%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한다. 이미 일감이 20% 줄었다. 우리는 손발이 묶였는데 이런 상황이 지속하면 다 죽는다.”

신 사장은 공장을 둘러보자고 했다. 현장을 봐야 이해가 빠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를 따라나섰다. 도금업체라는 선입관을 깰 정도로 공장은 자동화가 잘 돼 있었다. 로봇이 엠블렘 등을 도금액에 정밀하게 넣었다 뺐다 했다. 반짝이는 엠블렘이 만들어졌다. 그는 “자동화돼 있어 이 공정에는 직원이 많이 필요 없다”며 포장 라인으로 취재진을 이끌었다. 이곳은 달랐다. 50대 이상 여성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가 품질 관리와 포장에 집중했다. 주로 우즈베키스탄이나 방글라데시 출신이 많았다.

이들 인건비가 많이 든다는 얘긴가.
“지금 포장하는 분들 월 320만 원 정도 받는다. 하루 12시간(2교대) 근무한다. 인건비 올라가면 생산 비용이 올라가는 거 아닌가. 그런데 납품 가격을 올리기 힘들다. 경쟁도 치열하다. 쥐어짜야 한다.”
내년에도 최저임금이 10.9% 올라가면 더 부담될 텐데.
“도금업계 얘기를 해보자. 우리는 나은 편이지만 대부분 영세하다. 아버지는 사장이고, 어머니는 포장하고, 딸은 경리를 맡고, 아들은 납품한다. 월세 내야지, 폐수 관리비 줘야지, 이것저것 떼면 사장이 자기 봉급도 못 가져간다. 난 최저임금 올리는 걸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급격히 올리는 게 문제다. 이렇게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2~3년 안에 도금업체 50%는 문을 닫을 거다. 시간을 갖고 차근차근 최저임금을 올리면 안 되나.”

대법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6월 말까지 전국 법원에 접수된 기업 도산 신청은 836건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9.1%나 늘었다. 하반기에는 도산 신청을 하는 기업이 더 늘 것이라는 전망이다.

신 대표는 인터뷰 도중 "회사 문 닫은 사람이 더 편안해 한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신 대표는 인터뷰 도중 "회사 문 닫은 사람이 더 편안해 한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그는 답답한지 연거푸 물을 마셨다. 그러면서 말을 이었다.
 “부산의 한 도금업체가 최근 부도 처리됐다. 법정관리 신청할 거란다. 법원에서 받아들여지면 이자 낼 일도 없고 원금 상환할 필요도 없고 오히려 회사 관계자는 홀가분하다고 한다. 이게 요즘 중소기업 하는 사람의 심정이다. 답답하지 않나.”
신 사장은 최근에는 국회에서 살았다. 국회의원들에게 업종별, 지역별, 규모별 최저임금 차등화를 열심히 설명했다. 절박했다고 했다. 헛수고였다.

경영자총협회에 이어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도 최저임금 이의제기서를 고용노동부장관에게 제출하지 않았나.
“일단 한번 해 본 거다. 하긴 했지만…”

중기 중앙회는 최저임금을 사업 종류별로 구분해 적용하지 않았고, 지급 주체의 지급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인상률을 결정하는 등 문제가 있다며 재심의를 요구했다. 특히 중기 중앙회는 “법에서 규정한 노동생산성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었다”며 “지난 17년간 중소제조업체의 노동생산성 향상 속도보다 최저임금 인상속도가 2.02배 빨랐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는 재심의를 기대하지 않는 눈치였다. 대신 제도 개선 필요성에 더 집중했다.

“일본만 해도 지역별, 업종별 최저임금이 다르다. 노사가 대화를 통해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고 합의한다. 대략 연평균 3% 정도씩 최저임금을 올린다. 한국은 죽기 살기로 맞선다. 대화가 안 된다.”

일본 후생노동성 중앙최저임금심의회는 지난 25일 올해 10월부터 1년간 적용할 시간당 평균 최저임금을 3.1% 인상한 874엔(약 8851원)으로 결정했다. 평균으로 봤을 때는 한국의 내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올해보다 10.9% 오른 8350원)보다 많지만 지자체별로 비교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일본은 지역별로 최저임금이 다른데 전체 47곳 지자체 중 32곳의 최저임금이 한국보다 낮아진다.

재심의 안 되면 어떡하나.
“업계의 상당수 업체가 문을 닫든지, 아니면 불법을 하지 않을까. 최근 중국을 다녀왔는데 기술력이 우리 턱밑까지 올라왔다. 독일의 기술을 가져와 설비를 갖추더라. 기가 막힐 정도였다. 한국 중기의 임금 부담이 더 커지면 중국이 추월하는 건 시간문제다. 우리가 위기의식을 느껴야 한다.”

에스케이씨는 300인 이하 사업장이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2020년부터 적용된다. 벌써 걱정이다. 근무시간을 줄이고 직원을 더 뽑아야 한다. 한국 청년은 힘든 일이라고 지원을 안 한다. 외국인 노동자를 써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다.

신 사장은 최저임금을 업종별, 규모별 차등화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

신 사장은 최저임금을 업종별, 규모별 차등화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

“외국인 노동자는 숙련도가 떨어진다. 그런데도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 따라 내외국인 차별 없이 임금을 똑같이 줘야 한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월 30만원 받던 사람이 한국 오면 월 300만원 받는다. 그런데도 힘들면 나오지 않는다. 사실 외국인 노동자 쓰면서 한국에서 연간 11조원 정도가 밖으로 나간다. 비용은 많이 들어가는데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중기 중앙회는 그래서 외국인 노동자의 숙련도에 따라 임금을 차등 적용하자는 주장도 폈다. 응답 없는 공허한 메아리에 그쳤다.

그렇다고 회사 문을 닫을 수는 없지 않나.
“내 꿈이 뭔지 아나. 세계 최고 공장을 만드는 거다. 창업 초기 일본 공장에 갔다가 충격을 받았다. 당시 우리는 가내 수공업이었는데 일본 공장은 자동화가 돼 있었다. 거기서 결심을 했다. 일본을 뛰어넘어 세계 최고 공장을 짓자고. 거의 따라붙었다. 그런데 갑자기 힘들어졌다. 회사의 간부들은 대부분 창업 멤버다. 우린 같은 꿈을 품고 살아왔다. 이 꿈을 포기해야 한다. 정말 힘들다. 그동안 벌면 공장에 투자했다. 어음도 거의 발행하지 않았다. 대부분 현금 결제했다. 그런데 일감은 줄고, 최저임금 급격인상 등으로 비용 부담은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창업주가 자식에게 회사를 물려주려고 하겠는가. 난 여기서 잔뼈가 굵어서 버텼지만, 공부만 한 아이들이 버티겠나.”

그는 “앞으로 종업원을 채용하기보다는 자동화를 더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16년에 대출받고, 있는 돈 없는 돈 긁어서 200억원을 투자해 시화공단으로 이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정리했어야 했다. 그랬으면 후련했을 텐데. 안산에 있는 2개 공장은 폐쇄할 예정이다. 결국 자동화 더 하고, 안 되면 생산량을 줄일 수밖에 없다.”

신 대표는 "제조업을 하는 사람의 가슴에 숯덩이만 남는다"며 "그래도 하늘은 무너지지 않기 때문에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

신 대표는 "제조업을 하는 사람의 가슴에 숯덩이만 남는다"며 "그래도 하늘은 무너지지 않기 때문에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

신 사장에게 “36년간 기업을 일군 건 애국한 것”이라고 했더니 바로 반박이 왔다.

“거창하게 그런 말 필요 없다. 애국, 난 그런 거 모른다. 다만 정부가 기업이 신나게 뛸 수 있도록 운동장만 닦아 주면 된다. 기업에 맡겨 놓고 열심히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는 진보든 보수든 주관을 탓하지 않는다. 각자의 철학이 있기 때문에 존중한다. 다만 극한 대립을 하면 안 된다. 여야 정치인도, 노사도 격하게 맞서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이 본다.”

신 사장은 자립한다는 이립(而立) 30세 때 주변에서 2000만원을 빌려 창업했다.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자 그가 인수했다. 당시 그는 영업 사원이었다. 도금 기술자도 아닌 그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도금회사.

그는 일생을 바쳐 회사를 키웠다. 연구개발에 힘썼다. 종업원을 고용했다. 일자리를 만들었다. 그런데 신 사장은 “앞으로가 걱정”이란 말을 되풀이했다. 희망을 찾기 어려워서다. 그는 “제조업을 하는 사람은 죽으면 가슴에 숯덩이만 남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직원들에게 “하늘이 무너진 적은 없다”라고 말했다.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말자는 의지였다. 이 대목에서 그는 울컥했다. 눈시울을 붉혔다. 손님 앞에서 무슨 망신이냐며 “미안하다”고 했지만, 그는 충혈된 눈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누가 그의 눈물을 닦아 줄 것인가.

신정기 사장은 …

한국표면처리공업협동조합 이사장과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 겸 노동인력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1982년 인천에서 서광사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세웠다. 2008년에 법인으로 전환했다. 자동차사업부와 수도사업부가 있다. 현대·기아차와 GM, 도요타 등이 주 납품처다. 수도사업부에서는 수도꼭지 부품류와 샤워기 부품류 등을 생산한다. ‘정도를 걷자’라는 사훈을 바탕으로 그는 도금산업 선진화라는 오직 한 길만 걸었다고 자부한다. 신 사장은 “최저임금의 업종별·규모별 구분 적용 제도화와 함께 근본적으로 최저임금위원회의 구성과 결정방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종윤 논설위원
취재지원=변은샘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