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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혁주의 직격 인터뷰

“노총·경총·공익위원 안중에 영세 자영업자는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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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권혁주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윤희숙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윤희숙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정책 수단이어야 할 최저임금을 정치권이 정치에 활용하는 게 문제“라며 ’수많은 자영업자가 분노한 지금, 최저임금 결정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윤희숙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정책 수단이어야 할 최저임금을 정치권이 정치에 활용하는 게 문제“라며 ’수많은 자영업자가 분노한 지금, 최저임금 결정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최저임금을 놓고 온 나라가 혼란스럽다. 최저임금위원회가 결정한 내년도 최저임금 8350원에 대해 영세 자영업자가 대부분인 소상공인들은 ‘불복’을 선언했다. 범법자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많이 줄 수 없다는 항변이다. 소상공인들은 “생존을 위한 저항”이라고 했다. 불복 선언은 국내 최저임금 30년 역사상 처음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중소기업중앙회도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최저임금 재심의를 요청하기로 했다. 도대체 어디서, 무엇이 잘못됐기에 유례없는 반발 사태가 벌어지는 것일까. 2016년 최저임금위원회에 공익위원으로 참가했던 윤희숙(48)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를 만났다. 그는 “최저임금을 정책 차원에서 생각할 마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결정권을 준 것이 문제다. 그 결과 최저임금을 임금 협상하듯 정치적으로 결정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최저임금이 정치적으로 결정돼 #한노총·민노총은 선명성 경쟁 #경총은 정부에 코드 맞추기 급급 #영세업주·취약 근로자만 피해 #소상공인들 불복은 일대 사건 #망가진 제도 즉각 개선 불가피 #노사 대표가 의결에 참여 않는 #영국식 시스템 본보기 삼을만

‘최저임금을 정치적으로 결정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
“최저임금 조정은 정책이다. 인상의 근거 수치를 명확히 제시하고,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신중히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한국노총·민주노총의 최저임금위 근로자위원들은 어떤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높은 인상률을 꺼내 들고 선명성 경쟁을 할 뿐이다. 그래야 조합원들의 지지를 얻어 정치적 입지가 탄탄해지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영세 자영업주들이 피해를 본다.”
최저임금위원회에는 사용자위원과 공익위원도 있다.
“사용자위원의 ‘반장’이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대표다. 나는 경총 대표가 정부 뜻대로 움직인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2016년 공익위원으로 있을 때다. 논의가 진전되기 전부터 어디선가 ‘7% 인상설’이 돌았다. 낭설이라 여겼다. 그런데 내내 동결을 주장하던 경총이 막판에 7% 카드를 꺼냈다.”
경총이 왜 정부 영향을 크게 받나.
“경총은 최저임금 말고도 정부와 얽힌 이해가 많다. 또 대기업 위주여서 최저임금을 올려도 별 상관이 없다. 그러니 최저임금 갖고 정부와 척질 필요가 적지 않겠나.”
공익위원은 어떤가.
“중간에서 논의를 이끌어야 하는데, 성향에 맞는 쪽과만 따로 만나 밥 먹고 얘기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면서 그걸 정의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최저임금이 합리적 논의 없이 임금 협상식으로 결정된다. 숫자를 툭 내밀고 줄다리기한다.”
경총도, 공익위원도 영세 자영업자를 대변하지는 않는다는 소리로 들린다.
“현실이 그렇다. 또 중요한 점이 있다. 근로자 중에서도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는 이들의 입장은 최저임금위에서 사실상 외면당하고 있다.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면 일자리를 잃을 위험이 제일 큰 게 이들이다. 하지만 이런 건 양대 노총의 안중에 없는 것 같다. 최저임금을 많이 올리면 자기네 주축인 대기업 근로자들 임금도 덩달아 오른다는 생각만 한다. 오로지 정치다. 최저임금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영세 자영업자와 취약계층 근로자는 결정 과정에서 배제돼 있다.”
그렇다면 최저임금이 왜 필요한지부터 풀어나갔으면 한다.
“최저임금은 빈곤 대책에서 시작했다. 가구당 근로자가 한 명일 때, 저임금으로는 살기가 어려우니 최저임금을 올렸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우선 가구당 근로자가 여럿이다. 그로 인해 국내 최저임금 해당 근로자의 30%만이 빈곤층에 속하게 됐다. 바꿔 말해 최저임금 근로자 가운데 70%가 중산층 이상 가구원이다. 용돈 벌겠다고 아르바이트하는 대학생을 생각해 보라. 그뿐 아니다. 최하층인 1분위 가구는 77%가 근로자가 없다. 최저임금을 올려도 아무 혜택을 받지 못한다. 빈곤 대책으로서 최저임금이 갖는 의미는 많이 퇴색했다.”
정부는 최저임금을 ‘소득주도 성장’의 도구로 여긴다. 임금이 오르면 돈을 더 쓰고, 경제가 돌아가 성장을 한다는 논리다.
“글쎄…. 동의하는 경제학자가 별로 없는 것으로 안다. 기본적으로 혁신이 성장을 이끌고, 성장을 통해 임금이 오르는 게 순서다. 임금부터 올리면 단기적으로 가라앉은 경기를 끌어올리는 효과는 있겠지만, 성장 추세를 끌어내지는 못한다.”
빈곤 대책으로도, 소득주도 성장의 도구로도 별 효과가 없다면 최저임금 제도가 필요 없다는 얘기인가.
“아니다. 글로벌 경쟁 속에서 임금 격차가 몹시 심해지면서 갈등이 심화했다. 최저임금을 올려 임금 격차를 줄임으로써 갈등을 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면 취약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영세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본다. 이런 점을 모두 고려해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
우리는 2018~19년 29%를 올리겠다고 한다. 균형보다는 과속이라는 느낌이다.
“지난 일은 놔두고 내년에 10.9% 올리기로 한 것만 보자. 균형을 찾은 것이라면 왜 이런 수치가 나왔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어디에도 제대로 된 설명은 없다.”
10.9%에 대해 최저임금위는 ‘임금인상률 전망치 3.8%, 산입범위 확대에 따른 보전분 1.0%, 소득분배 개선분 4.9%, 협상 배려분 1.2%’라고 설명했다.
“임금인상률 전망치는 넣어야 한다. 하지만 소득분배 개선분 4.9%는 뭔가. 소득분배 개선분이라면 ‘어느 만큼 개선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이에 맞춰 숫자를 제시해야 한다. 그런 게 전혀 없지 않나. 그냥 10.9%를 만들어 놓고 ‘소득분배 개선분 4.9%’로 끼워 맞춘 것이다.”
선진국은 인상률을 어떻게 정하나.
“대체로 평균임금인상률과 물가상승률, 실업률을 고려한다. 소득 격차를 줄이기 위해 평균임금인상률보다 조금 높게 가져간다. 그리고 고용 상황을 살펴 여의치 않으면 인상 속도를 늦춘다.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최저임금을 많이 올렸다가 실업자를 쏟아낼 수 있어서다. 이번에 우리는 거꾸로 갔다. 고용은 최악인데 인상률은 두 자릿수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공약에서 ‘1만원’의 근거도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예전엔 ‘중위임금의 50%’라는 목표가 있었다. 3년 전에 그게 달성되면서 1만원이 나왔다. 왜 1만원인지는 모른다. 정책 목표가 아니라 정치권에서 내세운 정치 구호였다. 근거와 설명 없이 그저 감성에 호소하는 구호를 내세운 것 뿐이다.”
독립기구인 최저임금위원회가 결정하는 사안을 공약으로 삼는 것이 타당한가.
“설사 선거 열기 속에서 내걸었다고 하더라도 실제 집행할 때는 효과와 부작용을 면밀히 따져야 하는데, 그게 아예 없었다. 결국 영세 자영업자와 취약 근로자가 피해를 보게 됐다. 오죽하면 소상공인들이 불복을 선언했겠나.”
어떻게 해야 영세 자영업자와 취약 근로자의 입장이 최저임금에 반영될까.
“지금 구조로는 어렵다. 최저임금위는 난장판 속에서 툭하면 인신공격이 벌어진다. 밤을 새워도 논의는 별로 없다. 꼬투리 잡고 격앙된 분위기를 만들어 정회하는 걸 반복한다. 그러다 막판에 다른 숫자 내밀고 표결한다. 최저임금위원들의 대표성도 부족하다. 양대 노총은 전체 근로자의 10% 미만, 그것도 대부분 정규직만 대변한다. 경총도 대기업 위주다. 아무도 최저임금 정책의 주된 대상인 영세 자영자와 취약 근로자를 대변하지 않는다. 모순이다. 정부가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
대화 없는 임금 협상처럼 느껴진다.
“사실상 전국단위 임금 협상이다. 그래 놓고 ‘어기면 처벌하겠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법적 구속력을 가지려면 정부가 주도해 결정하는 게 맞다.”
최저임금을 놓고 이렇게 심한 반발이 있던 적은 없다. 제도를 고쳐야 하나.
“영국 모델이 평판이 가장 좋다. 영국은 정부가 위촉한 위원 9명이 사용자와 근로자 의견을 두루 듣고서 결정한다. 최종 결정에 근로자와 사용자 대표는 참여하지 않는다. 본보기 삼을만하다. 만일 우리가 지금처럼 근로자·사용자·공익 위원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근로자와 사용자 대표의 의결권을 없애면 된다.”
공익위원 중심으로 한다고 잘 될까. 지금도 공익위원이 한쪽에 치우쳤다고 ‘기울어진 운동장’ 소리를 듣는데.
“보완이 필요하다. 영국처럼 특정 단체를 대표하지 않겠다는 공직자 윤리를 서약하게 하고, 우리나라 금융통화위원회처럼 위원들의 발언을 기록하고 공개하는 게 한 방법이다. 발언을 공개하면 책임을 지기 위해 신중해지지 않겠나.”
법을 고쳐 최저임금 결정 방식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생기리라고 보나.
“전기는 마련됐다. 소상공인 같은 경제적 약자들은 정치적으로도 약자다. 반기를 들기 굉장히 어려운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30년 된 최저임금제도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대 사건이다. 정부나 국회가 나서서 제도를 손질하는 게 불가피하다.”
이번에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달리 적용하자는 의견이 나왔다가 거부됐다.
“섬유처럼 열악한 업종이라든가, 5인 이하 사업장에 대해서는 최저임금 인상률을 낮게 가져갈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융통성을 두면 지키라고 강제하기가 쉽지 않다. 수백만 자영업소에서 아르바이트 몇 명 쓰는지 일일이 파악해 단속할 수 있겠나. 또 6명 고용하던 곳에서 한 명을 내보내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어쨌든 소상공인들이 워낙 힘든 데다 무시당한다고 느끼니 업종별 차등 적용 얘기를 꺼낸 것이니, 실행 여부를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그보다 앞서 제도 틀을 제대로 바꾸는 게 시급하다.” 

윤희숙 교수는 …

한국개발연구원 재정·복지정책연구부장을 지냈다. 최저임금·연금 같은 소득과 복지 관련 분야를 많이 연구했다. 2016년 4월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이 됐으나 그해 최저임금을 결정에 참여한 뒤 바로 사퇴했다. “전문가들이 모여 깊이 있게 논의할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편 갈라 싸우고 서로 모욕만 하지 상대방 의견은 아예 듣지를 않더라”는 이유였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사회정책을 강의하고 있다.

권혁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