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폐합은 민주화 기여"에|"정신이상자의 망발" 규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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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8년간 흑막에 싸였던 세계역사에 유례가 없는 언론통폐합의 실체를 추적한 22일의 국회문공위 문공부확인감사는 진상에 접근하려는 의원들의 세찬 추궁, 통폐합주역의 교묘한 논리로 포장된 자기항변, 피해자들의 강압탈취상황폭로가 묘하게 어우러진 속에서 자정까지 9시간20분 동안 「언론대학살」 공방전으로 시종했다.
피해자증인신문에 이어 등장한 허문도 당시 대통령정무비서관이 간단히 『통폐합의 발상·입안은 내 책임으로 했으며 통폐합의 주역임을 부인 않는다』고 엄청난 사실을 밝히자 그 파문으로 회의장분위기는 고조되기 시작했다.
허씨는 『당시는 혁명적 권력의 계엄하였으므로 입안을 하고 집행을 하는데 성공이 불가피했다』 면서 『난세를 대처하는 방식으로 언론개혁을 했다』고 강변하자 의원들의 집중추궁과 질책이 이어지면서 열기는 부풀었다.
허씨는 『통폐합 절차가 합법적이냐 불법이냐』는 질문에 『혁명적 상황이었기에 타당성여부가 문제였지 합법성여부는 중요치 않았다』고 특유논리로 공격을 피한 뒤 『통폐합으로 언론은 체질이 강화돼 6·29선언 때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거침없이 논리의 비약을 시도하자 의원들은『국민전체가 잘못됐다는 통폐합을 옳다고 계속 주장하는 것은 정신에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까지 나섰다.
이날 허씨에게만 소요된 시간이 3시간여로 「인간 허문도의 면모」가 드러났는데 박석무 (평민) 강삼재(민주) 의원은 『비정상적인 인간의 잘못된 신념이 잘못된 권력에 편승해 엄청난 역사의 잘못이 일어났다는 확신을 받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날 감사에서는 『언론통폐합이 자율이 아니었다』는 이광표 당시 문공장관의 증언으로 야당의원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는데 무려 8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고 개탄하기도 했다.
의원들은 『당시 현직언론인과 상의했느냐』는 질문에 허씨가 이를 부인하자 청문회를 열어 반드시 밝히겠다고 다짐, 통폐합 진상파악 열기는 감사가 끝나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이광표 당시문공장관은 모든 것을 계엄사가 했다는 식으로 자신의 한계성을 옹호했으며 이에 『언론계의 이완용이 됐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힐책이 나오자 『오랜 언론생활을 하고도 그런 조치에 동의한 게 사실』이라고 고뇌에 찬 표정으로 대답하기도 했다.
피해자측의 증언은 그러나 숙연했다.
맨 처음 증인으로 나선 홍대건 전 경기신문사장과 최승효 전 광주 MBC사장이 강제로 회사를 빼앗긴 상황을 설명했는데 홍씨는 합수부에 불려가 당했던 가혹행위를 증언하는 도중 목이메는 듯 잠시 말을 잇지 못해 감사장 분위기를 한층 무겁고 숙연하게 만들었다.
홍씨는 『언론기관을 강제로 빼앗는 것은 한국언론사에도 없고 전세계 어느나라에서도 없는 걸로 알고있다』 면서 『매매대금 21억원을 한푼도 받지 못했다』고 폭로하자 의원들은 모두 『그런 일이 있을 수가!』 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감사장은 방청인과 보도진으로 입추의 여지가 없이 메워져 국민적 관심사임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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